
어제는 종일 어둡고 비가 내렸다.
이런 날 집에 있을 수 있어 참 좋았다.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다
또 감상에 젖어서 커튼을 치고
쇼파에 뒹구르며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메종 드 히미코'와 '나나'
조제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누도 잇신 감독 작품은 좀 달랐다.
아이처럼 '나나'를 보면서 감상에 젖기도 했다
유키녀석은 오리 베개에 웅크리고
코를 골며 한밤중이었고
얇은 이불 돌돌 말고
여러 잔의 커피만 들이키면서
종일을 그렇게 보냈다
정말 편하게 널브러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화만 봤는데도 자꾸만 허기지고
뱃속이 궁금했다.
삶은 달걀도 생각났고,
부침개도,
또 찐감자도 생각났다.
감자바구니를 뒤적이니
작은 감자 네개가 굴러다녔다.
밀가루를 풀어 범벅을 했다.
비 오는 날 감자범벅은 내겐 군침 도는 먹거리다.
우리 애들도 날 닮아서 좋아하는데...
만들어 놓고 조금 먹다가
수지에게 달걀을 사오라고 문자를 넣었다.
엥~ 딱 900원 밖에 없단다.
900원 어치라도 사오라고 ㅎ
검은 봉지에 다섯개를 들고 들어오며
"엄마, 주머니 뒤지니까 100원이 더 있는 거야
그래서 다섯개 사왔어"한다.
범벅도 먹고 달걀도 쪄서 수지랑 같이 먹었다.
음~ 비오는 날 먹는 즐거움이란..
.
.
.

비가 그치고 어둠이 가득한 시간..
검은 옷을 입고 상미랑 엄마아빠를 만나러 갔다.
큰 고모..
호상이라고 다들 웃고 있었다.
하얀 국화 한 송이 고모 사진 앞에 놓고
두번 절을 했다.
어릴적 고모의 모습을 얼마만에 보는 건가..
방학때 마다 고모 집에 갔던 기억이 아스라하게
지나갔다. 사진 속 고모는 맑게 웃고 있었다.
고모네 언니가 수녀님이라 꽃동네 수녀님들은
계속 들어오셨고 신부님도 오셨고 고모를 위한
아름다운 미사가 이루어졌다.
고모는 축복의 미사로 천국을 향해 가시리라
언니는 내게 천국가는 길을 알려준다며
꽃동네 회원용지를 들이댔고 삭제 된 이후로
잊고 있었는데 기쁘게 적었다.
수녀님들과 가톨릭 식구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음산하고 쓸쓸했겠는가..
친척들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고모..잘가요 천국에서 상숙이 언니도 꼭 만나요.
연옥에 계실지 모르니 기도 중에 꼭 기억할게요.'
집으로 오는 길에 비는 그쳤지만
스석스석 가늘게 내리는 비는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그렇게 종일 내린 비는
내 머릿속에 회색 추억하나 남겨 놓았다.
.
.
.

늦은 아침 잠..
아침 밥을 차려주고 다시 잠들은 늦잠
전화 벨 소리에 깼다.
오늘은 책만 읽어야지...
컴도, 전화도, 그 아무것도 안하고
밀린 책만 보아야지..
보육원 수업이 3주 쉰다
그래서 오늘도 덤으로 얻은 하루 같다.
묵상을 들으며 아침을 먹고
커튼을 젖히고 거실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건성으로 보았던 책을 꼼꼼히 읽었다.
공책에 마인드 맵을 하며 다시 정리했다.
오후 내내 그렇게 꼼짝 않고
집중할 수 있어서 생각보다 진도가 많이 나갔다.
채곡채곡 선생님의 강의가
다시 익숙하게 들어오는 것 같았다.
6시가 넘어서야 예지 전화를 받고
수지랑 저녁을 먹었다.
유키녀석 종일 지루하게 보낸 듯 해
산책을 시키고 다시 나가 뒷산을 걸었다.

숲은 어둑해졌지만 음악을 들으며
기분좋게 걸었다.
듬성듬성 사람들이 쌍을 이루며 걸었다.
혼자 걷는 것이 익숙치 않아
두리번 거리며 환한곳을 찾아 걸었다.
몸안으로 초록의 기운이 스멀스멀 들어오는
느낌이어서 상쾌하고 시원했다.
내 몸은 천천히 젖어 이마에 흠뻑 땀이 흘렀다.
참 좋은 땀흘림이었다.
네 바퀴 쯤 돌고 나니 한 시간이 휘릭 가버렸다.
나무 계단에 앉아 운동화 속 발을 꺼내
흙위에 올려 놓았다.
땀에 젖은 발이 참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다가 눈을 감고 앉아
숨을 들이켰다. 어느 새 땀은 싸악~스며들어
내 몸이 뽀득 거리는 것 같았다.
종이와 연필을 가져올 걸...
무언가 쓰고 싶었다.
난 핸폰을 꺼내 생각나는 조각 단어들을
끄적거리고 내가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참으로 신기했다.
방금 보낸 문자가 띠릭~ 하며 나에게로 왔다.
'숲, 운동화 속 내발,나무 계단, 아카시아카핏
자작자작 땀,상수리나무, 새소리, 바람소리,'
오래도록 앉아 여러 번 들은 노래
여러 생각들의 파편조각들..
공허한 웃음들 찬 공기에 날리고
주섬주섬 내려와 달걀과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들어왔다.
오늘까지 편안한 휴일~
어제 오늘..생각대로 잘 보내서 뿌듯했다.
내일은 오후 내내 바쁘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많이 웃고 잘 보내야겠다.
.
.
조금 더 나를 채우는 일...
또 천천히 비워야 하는 일...
아프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시작해야겠지..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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