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엄마-아’ 그 그리운 이름...
“나가 늘그막에 너를 낳느라 너무 힘을 써버렸당께…”
마흔 살에 막내를 낳고 어지럼증이 생긴 엄마는
예쁘게 자란 막내 결혼식에 꼭 가야만 합니다.
어지럼증으로 해남 집에서 목포 결혼식장까지는
나흘을 꼬박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이백 리 거리인데 말이지요.
“귀여운 내 새끼 시집가는데..
사부짝사부짝 걷다보면 날짜 안에 당도하겄제…”
결국 엄마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비가 와도 그 먼 길을 걸어 딸의 결혼식에 도착합니다.
엄마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가슴에 그렁그렁 물이 찼지요.
엄마는 결혼식장 혼주석에 앉아 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앉은 채 눈을 감습니다.
햇살이 내리는 창 아래 주저앉아
시선을 떼지 못하고 보던 저는 그만
엉엉 소리내 울어버렸습니다.
영화 속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두 해 전 겨울에 지독한 감기로 고생하면서
엄마가 걱정하실까봐 연락을 안했었지요.
견디다 못해 휘청거리며 병원으로 걸어가면서
너무나 기다렸던 벚꽃이 다 떨어진 채
봄이 소리 없이 지나는 걸 알았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밟고 나무를 붙잡고 서서,
엄마를 입 속으로 불렀습니다.
링겔을 맞고 빈 병실에 누워 엄마에게 전화를 했지요.
얼굴이 하얗게 되어 달려 온 엄마는
“에이구 철없는 것아, 미련하게 혼자 그러구 아팠단 말야” 하십니다.
"세월은 한 숟갈 한 숟갈 퍼먹다 보면
빈 종재기만 남는 찬장 속의 조청 같다"고
말하는 영화 속 엄마처럼, 계절이 숱하게 지나 세월이 저를
엄마의 모습으로 데려다 놓았지만 엄마 앞에서 나는
아직도 어른아이인 철없는 딸이었지요.
“하루종일 밭에서 일을 해도,
찬 겨울 맨손으로 빨래를 해도,
찬밥 한 덩이 부뚜막에 앉아 대충 점심을 때워도,
방 한쪽에서 한밤중에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우셔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비구니가 된 딸이 울면서 말하는 것을 보고
나도 엄마의 그런 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엄마의 부축을 받고 집으로 들어와
보자기에 싸온 엄마만의 맛이 담긴
야채죽을 넘기면서 엄마가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계속 아팠으면 좋겠다고 한답니다.
일에 바쁜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하루라도 엄마의 간섭 없이 마음껏 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면서 엄마인 나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바쁜 시간을 탓하며 더 넓고 큰 세상만 주려다가,
정작 아이들의 자유를 그늘 속에 가두지는 않는지요.
우리 아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최고로 좋은 과외선생님과
값비싼 책가방이 아니라, 엄마의 손길이 마음까지 닿을
따뜻한 야채죽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을 열어 신앙의 탯줄로 이어진
성모님의 뜨거운 사랑을 생각하며
아이들의 진정한 속삭임을 듣고,
두 눈을 바라보아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 / 서울주보 4월 23일 '말씀의 이삭란' 에 올리며...

어릴적 우리 집 뒤란...위엔
작은 보리 밭이 있었지...
우리 집 담장 울타리엔
산수유나무가 빨간 열매달고
봄이면 노랗게 노랗게
어린 가슴에 젤~먼저 봄도장 콕~찍어놓았어
돌멩이들 울퉁불퉁 모여앉아
햇살 드리는 장독대에선
겨울동안 행복의 배채우던
청국장도 익어갔지...
길다란 툇 마루에 앉아 밥풀 툭툭
벌어진 찰옥수수
젓가락 푹~찔러 한 입물고 바라봤던
채송화랑 분꽃들... 하늘의 별들~
장독대 쪼로록~돌아가면
돌담사이 우뚝 선 키 큰 밤나무..
떨어지는 밤송이 보며
추석을 기다렸지..
뒷마당 풍로에 얹혀진 양은 솥에는
엄마의 저녁 밥 짓는 냄새...
배 불뚝 나왔어도..
찬 없는 밥상이어도 ...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만큼 행복한날이' 또 있을까.
다시 그 그리운 시절의 뒤란에 머물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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