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일상의 하루..

‘작은 꽃의 숨소리’를 듣던 날...

cecil-e 2006. 4. 12. 22:46





여러 해 전 봄날,
미사를 드리고 주보를 보다가
가슴 가득 햇살이 쏟아졌습니다.
영화와 책으로 주님을 만나며
삶을 조명해보는 모임을 발견했거든요.
그런데 모임 시간은 오후였습니다.
오전 시간이 넉넉한 제게
오후 모임은 어려운 일이었지요.
오후엔 아이들과 동화책으로 만나야하기에
시간을 빼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있는데
며칠 동안 저의 머릿속에는
주님의 말씀이 맴돌았습니다.

‘하려고만 하면 길은 어디든지 있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제 마음에 내려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의 자매님들이 모이고,
담당 수녀님의 도움으로 오전팀이 구성되었습니다.
그렇게 첫모임이 시작되었지요.
수녀님 몇 분과 처음 보는 자매님들이
긴 탁자를 마주하며 둥그렇게 앉았습니다.
시작기도와 함께 흐르는 음악과
수녀님의 ‘기도 시’는
제 가슴에 말할 수 없는 전율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체칠리아입니다. 당신을 알게 되어 참 행복합니다.’

옆 사람에게 촛불을 건네며
자신을 소개하는 첫인사를 하다가
저를 빤히 보고 있는 보랏빛 꽃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수녀님, 저 꽃 이름이 뭐예요?”
“얘는 바이올렛이에요. 물만 주는데도
제 창가에서 하루종일 저를 행복하게 해줘요.
사랑을 듬뿍 줘야 해요.
예쁘면 좀 있다가 모두에게 드릴게요.”
‘화분은 하나인데
어찌 모두에게 주신다는 걸까’하고 생각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솜털이 송송 난 줄기와 이파리를
하나씩 잘라 건네주셨습니다.
사랑으로 꽃을 피워보라 하셨지요.
휴지에 곱게 싸서 두 손에 꼭 쥐고
집으로 오면서 가슴이 콩콩 뛰었습니다.
물컵 속의 이파리는 일주일만에 하얀 뿌리를 내렸고,
보름이 지날 무렵 여러 개의 이파리가
뾰조록뾰조록 올라왔어요.
3개월쯤 되어서야
몽글몽글 몽우리들 분주하더니
화분 속에서 해바라기 합창을 하고 있었습니다.
와! 이파리 하나가 피워내는 화음은
꿈같은 감동이었지요.
푸른 생명의 소리를 처음 들었거든요.

그 날 이후 바이올렛은 제게
가녀린 생명의 호흡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고,
눈여겨보지 못했던 작은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주님의 끈으로 묶여진 인연은 꽃물로 적시어
저를 다시 피어나게 했고,
꽃들이 해를 바라듯
함께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당신의 향기는 꽃보다 짙고,
그 말씀은 빛보다 따뜻합니다.
그 향기와 빛으로 가득한 당신의 정원에
부족한 저를 초대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모두가 주님의 정원 속의 나비가 되어,
작은 꽃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부활절을 맞이하겠습니다.
제게 들려주신 바이올렛의 꽃말처럼
주님 안에서 ‘영원한 사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부활절서울주보 '말씀의 이삭'란에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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