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일상의 하루..

흐린 날이었지...

cecil-e 2009. 1. 4. 22:10




아주
가끔은-
내가 아닌 것처럼.….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젯밤에 갑자기 찾아온 우울의 무게는
내 어깨에 내려앉아 나를 휘휘 맴돌고 떠나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이 혼미했다.
짙은 회색 안개 속에 버려진 것처럼
뿌연 연기가 몽롱하게 나를 어지럽혔다.
마음도-
생각도-
온통
싸아했다.
갑자기 보고 싶었다
무슨 얘기든 들어야 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렇게 내 이야기들 들어주는 친구가 있어
다시 호흡이 정상으로 찾아오고
조금은 마음도 정신도 흐릿했지만
나에게서 멀어져간 나를 제자리에 데려올 수 있었다.
아! 힘들었는데-
고맙다.


오전부터 난
바쁘게 보냈는데
그랬는데 말이지…
오랜만에 이젤을 펼치고
그리다가만 호박과 소국을 색칠하다가
집으로 달려와 오후엔 린드그렌의 삐삐를 보고
성가를 들으며 그림을 마무리하려고 했었는데…
아프고 나른했다.
목이 자꾸 아파와 상황버섯 끓인 물을
여섯 잔도 더 마셨나 보다.
친구가 사온 재료들로
만두를 빚고 저녁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좋아하는 만두를 같이 빚고 함께 먹는 즐거움으로
저녁시간이 맛있고 달았다.
귀찮아서 엄두도 못 내던 일이었는데…
정신없이 바쁘고 지친 상태인데도
친구는 주방 커튼을 만들어 와 예쁘게 달아줬다.
덕분에 우리 주방이 겨울 느낌의 빨간 체크로 더 예뻐졌다.
고맙다.

.
.





늦은 밤에
땀을 내고 촛불을 켰다.
'자비의 기도'를 바치고
묵상을 읽었다.
'말씀 열매'의 약속을 지키고
묵주를 팔에 감고 잠이 들었다.
이른 새벽이었나 보다
잠에서 깬 시간은 5시도 되지 않았다.
목은 더 아팠는데 새벽 미사를 드리러 가고 싶었다.
머리를 감고 만반의 준비를 다 했는데도
밖은 깜깜했다.
거실을 이리저리 거닐며 깜깜한 창밖의 풍경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멀리 버스가 지나가고 차들이 빨간 불을 켜고
달려가고 있었다.
산골의 밤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섭고, 겁도 나고,
'차를 갖고 갈까?'
이리저리 망설이고 서성이다
결국, 6시를 넘기고
나는 외투를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두 시간을 눈을 붙였을까
어느새 하얀 아침이 와 있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수지 밥을 챙겨놓고
서둘러 성당을 향해 달렸다.
주머니 속의 묵주를 꺼내어 버스에 앉으면서
기도를 드렸다.
그저 지금은 주님께 떼를 쓸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이렇게 허하고 지칠 땐 내겐 아무 방법이 없다.
아름다운 시간 속에 평화를 만나고
다시 평온해졌다.
신부님의 동방 박사 이야기를 가슴에 들였다.

'그러고 보니 신부님 축일이?'

'세상에서 늘 만나는 헤로대!
세상은 늘 불공평하지만 '주님의 나라'에서는
늘 공평하다
박사들을 주님께 인도했던 별!
우리는 별이 되어 주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모두에게 전해야한다.
그리하여 함께
주님을 경배해야 한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묵주를 꺼내 기도했다.
엄마가 야콘을 가져다 먹으라고 하셔서
가방만 바꿔 들고 시동을 걸었다.
그저 성가를 들으며 어디로든 달리고 싶었다.
성가 시디를 크게 틀고 기쁘게 따라부르며
엄마에게로 가서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 상을 받았다.
목이 아파서 그런지 야콘은 물이 많아 달콤했다.
집으로 이것저것 챙겨 달려오면서
마음이 따스해졌다.
평화가 다시 내게 햇살로 찾아왔다.
스테파노와 유키가 마당에서 맞아주었다.
만둣국으로 하루를 채운 늦은 오후
예지는 공연장으로 나는 약 먹고
온전한 쉼이다.
시간을 놓쳤지만 촛불을 켜고
'자비의 기도'를 드려야지
친구에게도 이 아름다운 기도문을 건네 줘야지….
기침이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적당한 아픔을 통해 소홀했던
건강을 더 챙길 테지….





내 사랑하는 사람들!
더 많이 사랑하게 하소서.
그들이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하소서.

또 다시 깜깜해졌다.
하루는 또 이렇게 내 곁에서
스멀스멀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나를 좀 더 익힌 시간이었지
고마운 하루에 감사하며….





우리의 삶이 아무리 고달퍼도
우리는 별인 것이다
내가 해가 아니고
달이 아닌 것도 좋다
그것이 없으면 세상이 망하는
그런 엄청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의 삶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임이 좋다.
별처럼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또 별처럼 빛나며
꿈꾸는 사람임이 좋다.


... '떠남과 만남' 중...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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