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르는
40년 이상, 무려 384점이나 되는 작품에서.
아픈 아내를
죽기까지 퍽 따스한 사랑의 눈빛으로만 그렸다고 한다
그녀는 항상 젊음을 유지한채 늙어갔고
그의 부인 마르트가 아닌.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으로 보나르는 아내를 그렸다.
그녀 스스로 갇혀있는 자폐와 폐렴이었지만
그녀 곁에 늘 함께 였던 착한 남편.
신경쇠약과 결벽증으로 외출을 꺼리는 그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녀의 모습을 그렸던 보나르.
그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보호하기위해 정식혼인을 하고
정상이 아닌 그녀에게 모든것을 물려준다는 유언을
미리 작성한 남자.
.
.
그가 그녀와 함께 살기위해 구한 분홍 지붕의 작은 아뜰리에.

피에르 보나르 "미모사가 피어있는 아틀리에"

Red Roofs in Cannet, 1942. Oil on canvas.

View of Le Cannet, Roofs. 1941-1942. Oil on canvas.

The Terraces. 1941. Oil on canvas.

양귀비

보나르의 체리파이


보나르의 티타임

Pierre Bonnard (1867년 ~ 1947년) / 프랑스
파리 교외 센현(縣) 퐁트네 오 로즈 출생.
처음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공부를 하였으나
그림에 흥미를 느껴 틈틈이 아카데미 쥘리앙이나
미술학교에 다니면서,
P.세뤼지에, M.드니, J.뷔야르 등과 가까이 지내며
고갱의 영향을 받아 반인상파인 나비파(派)를 결성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흑갈색을 기조로 한 차분한 색감으로
파리시민의 일상생활을 상징적으로 그렸으나
40대에 접어들면서는 회색조에서
서서히 밝은 색조로 이행하였다.
독특한 시각에서 잡는 기지적(機智的) 구도로,
풍경, 멱감는 나부(裸婦),
정물·사람이 모인 부드러운 실내정경 등을,
소박하면서도 감미로운 정감으로 그려,
뷔야르와 함께 대표적인 앵티미스트[親密派]로 높이 평가되었다.
색채에 대한 관심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져
60세를 지나면서는 선명한 명색(明色)의 조화를 추구하였으며,
차차 대상의 설명에서 벗어나 현란한 명색이 교향(交響)하는
독자적인 색채의 세계를 확립,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남프랑스의 르 카네에 은거하여
제작에 몰두하였으며,전후에 그곳에서 죽었다.
* 나비파.
19세기 말 폴 고갱의 영향을 받은
젊은 반인상주의(反印象主義) 화가 그룹.
.
.

The Lunch of the Little ones. c. 1897. Oil on wood.
공기에 녹는듯한 달콤한 색채와
나른하면서도 따스한 빛의 느낌이
보나르님의 그림의 특징이다.
보고 있으면 기분을 따스하게 만들어 주는..
그림처럼 그가 참 따스하다.
차 한잔 들고 보나르의 그림을 감상하며
행복해지는 건...
박스에 담아둔 그림 도구를 꺼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오후..
새해 새날은 또 이렇게 이틀째을 맞는다.
새해에는..
초심을 잃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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