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와 시의 숲...

취한다..

cecil-e 2006. 4. 2. 23:37


이미지의 마취여
오오 난 오늘도 이미지에 취한다
당신이라는 이미지,
황혼이라는 이미지,
창문이라는 이미지,
시간이라는 이미지,
1995년 여름이라는 이미지,
아스팔트에 쏟아지는 햇살이라는 이미지,
난 취한다 도대체 취한다는 건 깨어난다는 뜻이리라
난 길가의 나무에 취하고
상점에 취하고
버스에 취하고
당신의 눈에 취하고
당신과 앉아 있던 일식집 나무 의자에 취하고
이미지가 현실이다
길 위에 텀벙대는 시간에 취하고
길 위의 개미들에 취한다
개미들 속에 흐르는 우주에 취하고
태어난 지 두 달밖에 안된,
하느님이 우리 집에 보내주신 사랑스런 준이에게 취한다
오늘도 뉘엿뉘엿 지는 저녁 햇살에 취하고
잘못 살아온 내 인생에 취한다
이미지의 마취여 오늘도 난 취한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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