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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만록웰(15): 문제와 해답

cecil-e 2005. 10. 23. 19:53

머리를 긁적인다. 이게 무슨 뜻일까? '난감하다'는 뜻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얼굴 표정을 볼 수 있다면 더 확실할 것이다. 눈썹은 모아지고 눈꼬리는 처지고 미간은 찌뿌려져 있을 것이다. 입으로는 '이것 참, 큰일났네'를 연발할 것이다.

 

이 그림은 자화상이다. 자기를 그렸다는 말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그림이 말해 준다. 삐쩍 마른 체구며 듬성듬성한 짧은 더벅머리가 영락없이 바로 그 사람이다. 캔버스를 마주하고 팔레트가 널려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림쟁이 노만 록웰, 바로 그 사람이다.

 

<텅빈 캔버스를 마주한 화가 (마감), 1938>

Artist Facing Blank Canvas (Deadline)

노만 록웰 (Norman Rockwell)

 

무릇 자화상이면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 자화상은 좀 이상하다. 뒤돌아 앉았다. 그것도 단정하고 조신한 모습이 아니다. 하릴없이 다리를 쩌억 벌리고 불안스레 의자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등짝과 엉덩이만 보여준다. 얼굴은 고사하고 땜통 자국 선연한 뒤통수만 보여준다. 그 뒤통수를 목탄연필 잡은 손으로 긁적거리고 있다. '이것 참, 큰일이네.'

 

그런데 뭐가 그리 '큰일'이 난 것일까? 그림 제목이 말해 준다. "텅빈 캔버스를 마주한 화가(마감)." 마감 시간은 다 돼 가는데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캔버스 상단에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라는 글이 그려져 있다. 록웰이 가장 많이 표지를 그린 잡지 이름이다. 그는 40여년 동안 이 잡지를 위해서 322장의 표지를 그렸다. 이번에도 그 잡지의 표지를 그리려는 중이다. 그런데 마감 일이 닥친 것이다.

 

캔버스 왼쪽 위에 8월6일이라는 쪽지가 압핀으로 꽂혀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 위에 시계까지 걸려 있다. 이미 마감 날은 닥쳤고, 이제 시간을 세고 있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꼭 그림일 필요는 없다. 문인이라면 청탁 받은 원고일 수도 있고, 신문기자라면 기사 꼭지일 수도 있다. 목사라면 주일 설교 원고일 수도 있고, 학생이라면 중간고사나 기말리포트일수도 있겠다.

 

마감이란 게 원래 그렇다. 단 24시간 여유만 있어도 농땡이를 부리는 법이다. 그러다가 정작 마감일이 되고 마감시간이 시간 단위, 분 단위로 다가오면 그제서야 피가 마른다. 오죽하면 분치기, 초치기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분/초치기로 시험을 잘 봐 본 경험은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분/초치기를 해야 그럴 듯한 작품이 나오는 경우는 더러 있다.

 

아드레날린이 쏟아지고, 혈류가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면, 그제서야 머리도 빨리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쓴 글은 '내가 봐도 제법이네' 하는 소리가 나오게 한다. 물론 그건 시간에 비해 그렇다는 것일 뿐이겠다.

 

아무튼, 이 화가는 난감하다. 그림 그리기를 위한 사전 준비는 다 돼 있다. 화가 오른편에 너저분하게 흩어진 책이며 연습 그림들이 보인다. 이책 저책을 펴놓거나 엎어놓은 걸 보면 마지막까지도 소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혹은 소재 정도는 이미 정했을 것이다. 그걸 가지고 수십 장의 연습 그림을 그려봤다. 어쩌면 소재와 구상까지도 마친 것일까? 그렇다면 이젠 구도를 잡고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면 된다.

 

그런데도 채워야할 화폭은 아직도 텅 비어있다. 생각해 둔 소재나 마음속의 구상이 갑자기 마뜩치 않게 느껴진다. 이를 어쩌나. 이제 와서.

 

팔레트에 물감도 이미 짜두었다. 물감 녹일 테레핀유도 한 통 가득 채워놓았다. 서너 자루의 그림붓도 깨끗이 빨아 놓았다. 옷소매도 잔뜩 걷어 말아 올렸다. 이제 손에 든 목탄 연필로 설렁설렁 밑그림을 그리고서 색만 칠하면 된다. 그런데 미치겠다. 첫 터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도무지 요량이 안 선다.

 

담배도 피워 봤다. 록웰은 원래 골초였다. 그는 항상 파이프를 입에 물고 살았다. 그림에서도 그의 바지 왼쪽 뒷 주머니에는 파이프와 담배가루가 든 봉지가 꽂혀있다. 종이성냥 한 권은 의자 뒤쪽에 팽개쳐져 있다. 성냥을 다 찢어낸 게 보인다. 그만큼 피워댔다는 소리다.

 

물론 더 피울 수도 있다. 오른쪽에 엎어놓은 책 옆에 성냥 한 권이 더 있으니까. 그마저 삼분의 일쯤 파이프 불붙이는 데 써버렸다. 그러나 목이 칼칼하고 눈까지 뻑뻑하다.

.

 

다른 때 같으면 담배 몇 모금에 아이디어도 곧잘 떠올랐다. 붓 잡은 손에 속도가 붙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도대체 담배도 효험이 없다. 이를 어쩌나. 난감하기 짝이 없다. 캔버스는 여전히 텅 빈 채 화가를 노려보고 있다.

 

록웰이 이렇게 마감시간의 재촉을 받게 된 이유가 뭘까? 그림 한 장 가지고 다 알 수는 없다. 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친다. 그렇지만 엉뚱한 상상 하나 해 보자. 혹시 그는 골프를 즐기다가 그렇게 된 것이나 아닐까? 그가 신고 있는 신발이 요즘 골프구두 비슷하다.

 

하지만 골프 때문에 마감에 쫓겼다는 가설은 좀 미심쩍다. 나는 우선 그가 골프를 즐겼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골프도 하루 이틀이다. 잡지사의 표지 그림 주문은 보통 몇 달씩 미리 내는 것이 상례다. 그러니 골프 좀 쳤다고 마감 날까지 쫓길 리는 없다.

 

 

예술가 같은 자유업 좋다는 게 뭐겠는가. 낮 시간에 좋아하는 골프도 쳐가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러니 설사 그가 골프를 좋아했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마감 날의 날벼락을 맞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 어째서 부지런한 일러스트레이터/화가로 정평이 난 노만 록웰이 이렇게 난감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일까?

 

<텅빈 캔버스를 마주한 화가(마감)>는 1938?작품이다. 그보다 5-6년 전에 록웰은 자기 그림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자기 하는 일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는 십대때 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열아홉 살이던 1913년에는 벌써 메국 보이스카웃 기관지 <소년 생활(Boys' Life)>의 그림 편집인이었다. 스물두 살이던 1916년에는 당대 최고부수의 시사잡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첫 표지를 그렸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흘렀고, 그도 이젠 마흔 줄로 접어들었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자처했지만 어느 아티스트 못지 않게 정열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티스트를 자처하기에는 시절이 너무 하수상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유럽 화단은 이미 인상주의가 만개했다. 그가 그림을 시작했을 때는 온갖 새로운 화풍이 실험되고 있었다. 큐비즘과 미래파,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메국의 화가들도 덩달아 유럽 그림을 마구 흉내내고 있었다. 그런 그림들이 고급 예술 행세를 했고, 록웰의 그림은 시대에 뒤진 저급 예술로 취급됐다. 그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그래서 그는 빠리로 갔다. 1931년의 일이었다. 설흔 일곱의 나이에 새로운 화풍을 배우러 간 것이다. 그러나 새 화풍은 암만 해도 성에 들지 않았다. 아마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남들이 아무리 '이게 첨단이야'하고 주장해도 맘에 들지 않았다.

 

후일 그는 인상파 식으로 빛을 잔뜩 화폭에 담아보기는 했다. 그러나 기껏해야 거기까지였다. 그는 도저히 추상화를 흉내낼 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유럽 화풍이 '자기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일년 만에 짐을 싸들고 귀국했고, 이 그림을 그리기 이년전인 1936년,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 그림의 소재는 메국의 서민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메국의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는 데에는 유럽의 새로운 화풍이 필요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의 마음은 심난했나 보다. 그는 화폭을 대하기 전까지의 작업이 탄탄한 화가다.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끊임없이 그림 소재를 찾는 사람이었다. 소재가 정해지면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 스케치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모델을 쓰기도 했지만 만족스런 포즈가 나오기까지 수백 장씩 사진을 찍어 연구도 했다. 그때 사진 값이 얼마나 비쌌는지 생각하면 이건 대단한 투자다. 그림 값이나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서도 실물 크기의 화폭에 서너 번 연습을 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캔버스를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캔버스를 앞두고 이렇게 난감해 한다는 건 그건 마음의 문제임에 틀림없다. 소재가 정해지고 대강의 구도도 정해졌다. 이른바 그림의 '개념화' 단계가 끝났다는 것이다. 이젠 '형상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록웰은 멈칫거린다. 내 개념화는 괜찮은 것일까? 이대로 형상화를 시도해도 되는 것일까? 그게 바로 지금 자화상 속의 노만 록웰이 힘없이 다리를 쩌억 벌리고 뒤통수를 긁적거려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다행히도 그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마감에 쫓기는 화가의 그림 속 캔버스는 비어있지만, 노만 록웰은 <텅빈 캔버스를 마주한 화가(마감), 1938>을 완성해서 마감에 맞춰 잡지사에 보냈다. 그림 속의 뒤통수 자화상과는 달리, 실제의 록웰은 이 그림을 완성하고 낄낄거렸을 것이다. 그림 속의 자기와 실제의 자기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록웰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자기를 일부러 희화시킨 것도 아니다. 그는 실제로 그림 속 화가가 당하고 있는 고통스런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을 것이다. 저런 그림은 경험 없이 나오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렇지만 마감에 쫓기는 고통스런 순간을 포착해서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그는 마감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림은 예정된 날짜에 맞춰서 잡지 표지로 등장했다.

 

 

이 자화상을 통해서 록웰은 자신의 두 모습을 보여준다. 첫 번째 록웰은 지난 수년간 마음 고생을 겪었던 록웰이다. 빈 화폭을 놓고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는 바로 그 모습이다. 두 번째 록웰은 화폭에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같은 관람자와 함께 그 화폭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록웰이다. 그는 이미 자기 분석을 끝냈고 자기 방식에 확신을 갖게 됐다. 그리고는 주어진 그림을 마감 전에 완성했다.

 

문제를 묘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이건 무척 시사적이다. 심지어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메시지다.

 

"문제가 생겼냐?

 당황하지 마라. 낙심하지 마라.

 그냥 그 문제를 자세히 뜯어봐라.

 찬찬히 살펴서 잘 정리해 봐라.

 그럼 어느새 그 문제는 해결돼 있을 것이다.

 문제와 해답은 같은 것이다.

 엉뚱한 데서 답을 찾지 마라.

 해답은 이미 문제 속에 있다."

 

 

평미레 드림

2005/10/17


 
출처 : 평미레 |글쓴이 : 평미레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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