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함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cecil-e 2014. 10. 4. 01:21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2003)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



빨간모자를 쓴 여인  

두 작품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입술에 찍힌 흰점은 촉촉함을 나타내며, 살짝 벌린 입술모양은 누군가와 말을 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생동감을 나타내준다. '빨간 모자를 쓴 여인'도 콧등과 입술에 흰점이 보이는데 빛의 반사를 이용한 대단한 빛의 묘사력이다.



진주 귀고리 소녀

1665년경, 46.5*40cm, 캔버스에 유채





미니어처 화가의 기술과 솜씨로 아주 작은 크기의 화폭에 소녀들의 초상을 돋보기로 보듯 자세하게 그리는 반 미리스와 달리 베르메르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의 실내 정경의 그림과 비견할 만한 크기의 화폭을 선택했다. 그는 소녀의 모습을 명확한 윤곽선 없이 그렸다. 그 작품의 됨됨이를 제대로 맛보려면 떨어져서 보아야만 한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도움을 받은 심도의 조절이 작품의 출발점이다. 화가의 재능으로 그 나머지를 해결한다. 여기서 사실주의란 겉보기에만 그런 것이다.

베르메르의 일생은 오늘날에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그가 1632년 10월 31일에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 그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생김새를 지녔고 화가로서의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그에게는, 렘브란트나 고야 혹은 반 고흐처럼, 대개의 예술가들에게 있는 자화상 한 점 남아 있지 않다. 작업하고 있는 한 화가의 모습이 유일하게 등장하는 그의 걸작품 〈회화예술〉 (이 그림은 오랫동안 〈아틀리에 속의 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에서 묘사된 이가 화면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듯이, 그는 관찰자인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길 주저하고 있는 듯하다. 공적인 양명(揚名)에 대한 이런 그의 꺼림은 자신이 그린 작품에 대한 그의 까다로운 예술적 요구와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약 40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하나 그중에서 남아 있지 않는 것도 있다. 그 진품 여부가 의문시되는 것을 빼면 43년의 짧은 생애에서 그가 남긴 전 작품은 33점 이상 되질 않는다. 그러니까 그는 1년에 고작 두세 점의 그림만을 그렸을 뿐인 셈이다.




베르메르가 남긴 몇몇 되지 않는 작품들은, 그가 화가로서의 자기 직업을 얼마나 책임감 있고 양심적으로 꾸려 나갔는가를 조용하게 증거해 준다. 1년에 고작해야 두어 점의 그림을 그렸던 그는 공공의 예술시장을 위해서 작업했다기보다는 예술 후원자들을 위해 작업했을 것이었다. 11명의 아이를 두었던 그가 그 몇 점 되지 않은 그림만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여기에서 명백해진다. 오히려 그는 그림 이외의 다른 빵벌이 수단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1653년 결혼 후에 그가 화가 조합이던 루카스 길드에 등록한 이유도 이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의 관습으로는 등록된 화가만이 자신의 그림을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화가뿐만이 아니라 화상(畵商)으로서 그리고 예술 전문가로서의 이름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기 위해, 생활의 연명을 위해 그랬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일생에는 시련의 검은 구름이 걷히질 않았다.

언제나 무기력과 가난이 일용할 양식처럼 그를 붙어다녔다. 특히 그는 말년에 말못할 재정적 어려움과 가난에 시달리다가 이곳으로부터 떠나갔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요에 대한 그의 예술적 사랑이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어쩌면 그렇게 알려지기를 꺼렸던 오히려 내밀한 곳에서, 그저 어떻게 회화적 언어로 그 다채로운 삶을 표현할 수 있을까에 골몰하였을 그의 생애와 이어짐을 확인하게 된다.





작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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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를 하는 여인



The Milkmaid <우유 따르는 하녀>
베르메르 Jan Vermeer, (1632~1675)
1658~60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진주 목결이를 하고 있는 여인



편지를 읽는 여인



Girl Reading a Letter at an Open Window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
창밖의 세계가 아닌 편지의 세계에 빠진 소녀.

창가에 서 있지만 창밖을 보지 않음.
그 내면에 심취!

모든 것을
'사랑'을 통해 세상을 바라 봄.
세상의 모든 것을 통해 사랑을 보고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의 시작!




물 주전자를 든 소녀

물을 따라 주러 오는 그리트라는 하녀가 등장.
그림 속에 등장한 상상속 여인.
베르메르를 가장 잘 이해함.
빛을 얼마나 소중히 하는지 앎.
"제가 창을 닦아도 될까요?" 라고
말하는 것은
먼지 덮힌 창을 닦으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녀가 물을 채우고,창을 열고,
아뜰리에를 점검하는 것은
그만큼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물은 서양 미술사에선 사람의 감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물이 넘치지 않게 조절 하는 것은 금욕, 절제를 뜻하지만,
물이 넘치지 않게 하는 의미는 오래도록 오래도록 사랑하기 위해서..
한 번 넘치면 바닥나버리기 때문에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나타 내는 것이라고 한다.

.
.

오늘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놓쳤던 장면과 콜린 퍼스의 강렬한
눈빛을 통해 베르메르의 작품을 관찰할 수 있었고,
스칼렛요한슨의 예쁜 모습도
그림 속 소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를 다시 내리고
베르메르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영상을 보면서
200년 넘게 그의 작품이 묻혀있었음을, 히틀러에 의해
회화예술의 최고라고 칭해질 만큼 소장이 되었었고,
히틀러의 죽음으로 다시 빈으로 오게 되어
여러 사람의 소장으로
결국 오늘에 이르기까지...
베르메르의 작품은 정말 놀라웠다.
빛의 반사를 통한 빛의 묘사력!
'자연의 거울'이라고 칭하는 회화예술의 재현은
어쩌면 완벽한 허구로 소설을 쓰듯
그의 그림은
가장 위대한 영화 스틸이라고
평할 수 있는 것 같다.

네덜란드 델프트의 그의 미술관에서 정말 오랜 시간
그의 작품을 보고 또 보면서
자꾸자꾸 발견되는
소소한 것들을
나도 발견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 작품으로 들어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통해 베르메르의 세계를
좀 더 깊이 엿볼 수 있었던 하루.

그 하루가 이리 또 훌쩍 지났다.
오늘 밤 꿈속엔
작품 속 델프트의 미술관을 거닐었으면.








델프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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