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와 시의 숲...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cecil-e 2008. 5. 31. 16:28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즈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꽃 그늘 아래로.



... / 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