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와 시의 숲...

블루마운틴이란 이름의 코오피...

cecil-e 2006. 5. 10. 00:31


그에게로 다가가며
어린아이처럼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예전처럼
하얀 웃음을 지으며

-차 한잔 마실래요?-
했다


침을 꼴깍 삼키며
속으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명동길의
사람들 틈을 헤치며
강아지처럼
졸랑졸랑 그의 뒤를 따랐다

...멋진 이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고급스런 곳에서
차를 마실까
그곳은 차값도 비쌀거야
나같은 꼬마숙녀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일까

실크보우타이를
단정하게 맨 웨이터가
정중하게 의자를 당겨주겠지

이런 옷차림으로는
창피할텐데...
하며
외국 영화에서나
잠깐씩 보았던
상류사회의
격조높은 분위기의 홀을
연상하고 있었다

....값비싼 샹들리에와
실내 장식품

온갖 잡음을 다
흡수해버릴 만큼
두텁고 폭신한
아라비아의 카핏트

희끗희끗한 귀밑 머리의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연주하는
스트라우스의 왈츠가 흐르고
영국 황실에서나 사용한다는
투명한 소리가 나는
본 차이나 코오피 잔

그런 곳에서는
어떤 것을 주문해야한담
그렇지
코오피 중에서는
가장 독특한 맛을 낸다는
블루 마운틴이 좋겠군

품위있는 행동으로
설탕은
티 스푼으로 하나 정도만 넣자...

-집에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시죠?-
그의 물음에 나는 깜짝 놀라서
-미도파 앞요-

잠깐동안
여러가지 상상을 하면서
걷다보니 우리는
거의 명동의 중심가를 거쳐
큰 길 쪽으로 나오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럴듯한 곳은 벌써 다
지나왔는데...

잠시후
그가 불쑥 문을 밀고
들어간 곳은
그저 흔한 다방이었고
나의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라비아의 카핏트는
그렇다손 치고
딸깍 딸깍 소리를 내며
슬리퍼를 끌고 오는 여자는

광택도 없이 닳은
스탠리스 쟁반 위에서
탁자에 놓여지는 물컵을
망연히 내려다보는
나에게
별로 정중하지도 못한 목소리로
-뭐 드실래요?-

하마터면 나는
'블루 마운틴요'
할뻔 했다.

...김미선


once There Was A Love / Jose Felic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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