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보고,읽고..

천경자 그녀의 작품을 만나고...

cecil-e 2006. 3. 12. 23:23




지난 금요일 동화 개강하고
뒷풀이 자리에서 점심만 먹고 경숙씨랑 슬쩍 빠져
현대 갤러리로 달려갔다.
천경자! 그녀의 작품은 내겐 너무 강해서
그다지 애착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친구가 들려주는 그녀의 삶을 듣고
그녀의 작품을 보는 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내게 왔다.
낮달이 조금 걸려 봄 기운이 완연한
경복궁 담벼락을 바라보며 눈부신 사진 한 장씩박고
찬찬히 친구와 작품감상을 했다.
글을 쓰는 친구라 그런지 또 다른 느낌으로
우리의 얘기는 서로의 느낌을 나누며 진지했고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그런지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흰벽에 씌여진 조각단어들...
상처,슬픔,고독,추억,열정,희망...
그녀가 프리다 칼로를 좋아하는 이유...
먼로의 머그잔과 강한 문양의 한복
조용필과 담소를 나누던 사진 한 장
바닷가 조가비들...
그녀가 그려내는 뱀이 상처와 슬픔이라면
머리위에 꽃은 화려한 겉모습이었다.

연필 드로잉과 스케치..
수없이 연습했던 꽃잎들...
그녀의 소장품인 다양한 헝겊인형들..
그녀의 내음이 뭍어있는 추억들을 보며
멀리했던 그녀를 조금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작품속엔 그녀의 자화상이
투영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낮 두 시간의 그림여행은 봄날의 싱그러움이었다.

경숙씨랑 쌤, 안순언니를 모두랑에서 다시 만나
레몬에이드 한잔으로 갈증을 풀고
나는 서둘러 일어나 보육원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겨울을 지나고 처음 만나는 아이들...
겨울에 미처 마치지 못했던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마저 수업하고 즐겁게 토론했다.
한 학년 오른 모습이 부쩍 커 보였다.
과자 하나씩 들려주고 돌아오며
이주헌의 풍경화 읽기를 전철속에서 다 읽었다.

아침에 모네의 포플러나무를 만나 연둣빛이었듯이
하루종일 그림속에서 그림처럼 보낸 날들이었다.

무거운 책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하루를
꽉 차게 보내어 뿌듯했다.

천경자!
뇌일혈로 쓰러져 기억이 희미해진 그녀가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만날 수 있었음... 바래본다.


..



티베트의 쇄둔 탱화축제에 내걸리는
대형 탱화처럼 갤러리현대 외벽에
천경자씨(82)의 커다란 사진이 내걸렸다.

‘천경자-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라는
‘생애 마지막 축제’의 시작을 화가는
흡사 여신처럼 당당하게 선언하는 듯 했다.
하지만 사진 속 화가의 눈은 슬퍼보였다.
겉모습은 ‘꽃처럼’ 화려하지만,
내면은 ‘뱀처럼’ 슬프고 고독했던 화가였다.

2003년 미국 뉴욕에 사는 큰딸네 집에서
뇌일혈로 쓰러진 화가는 고국에서의
전시 소식에 말 대신 눈빛과 손짓으로 반겼다고 한다.

갤러리 내부엔 250여점의 작품들과 함께 화가의 집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 사진과 소장품들도 전시된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멕시코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그림엽서들이다.
교통사고 후유증과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바람기로
고생한 칼로의 자화상은 천경자의
여인상과 뿌리가 같은 것처럼 보인다.

두 남자와 만나고 헤어지며,
각각 두 아이를 둔 화가는
“내 온몸 구석구석에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 여인의 한이 서려 있다”고 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를
천씨가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진품’으로 결론 내려진 ‘미인도 위작사건’도
화가에겐 큰 상처였다.

뱀 35마리를 담은 ‘생태’를
1951년 부산에서 전시해 화제를 모은 이후,
뱀은 꽃이나 여인과 함께 천경자의 상징처럼 각인됐다.
뱀은 평생 화가가 짊어졌던 상처이자 ‘업’이고,
꽃은 그 뱀이 상징하는 고통이 승화된 모습이리라.

이번 전시에서는 ‘단장’, ‘목화밭에서’(1954), ‘시인’
‘모기장안에 쫑쫑이’ 같은 1950~60년대의 미공개작 6점,
‘길례언니’(1973),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
‘황금의 비’(1982), ‘누가 울어’(1988) 등
1970~90년대의 대표작 30여점,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한 후
미국에 이주해 그린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중 채색이 일부 덜 된 미완성 작품 40여점과
수채화, 펜화, 연필화 등 180점에는 사인이 없다.
작가 박경리씨가 ‘천경자’라는 시의 마지막을
‘고약한 화가’로 끝냈듯, 완벽한 그림이 아니면
사인하지 않았고, 팔았던 그림도 돌려달라고
한 적이 많았던 그림에 관한한 ‘고약한 완벽주의자’였다.

여인상 외에는 1969년 타히티에서 시작해
유럽과 아프리카, 중남미까지 열두차례
해외 스케치 여행을 떠나 담은 풍경화가 많다.
원색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국의 풍경화는 작가가
이 땅의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 만난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생태’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황혼의 통곡’ 등 정동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된
93점을 함께 감상한다면 작가의 작품세계를
거반 다 둘러보는 것일 듯하다



‘황금의 비’1982년작(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년작(아래).

이번 전시가 아마도 건강이 좋지 못한
화가의 마지막 전시일 듯 싶다는
가족과 미술동네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듯
화가의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랜덤하우스중앙)와 화가의 그림에세이
‘꽃과 영혼의 화가 천경자’(랜덤하우스중앙)가
동시출간됐다.

출판기념음악회가 26일 오후 5시
경기도 파주 헤이리 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에서 열린다.
다음달 2일까지. 일반 3,000원 청소년 2,000원 (02)2287-3500

... 이무경기자


시간 되시면 봄날의 그림전...
꼭 가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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