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보고,읽고..

[스크랩] 그냥...좋은 시구들-백석

cecil-e 2005. 8. 25. 08:59
 

 ...가난하고 가난하고 외롭고도 또 지극히 쓸쓸한 그가 물 맑은 눈빛을 하고 세상을, 사람을 바라보며 조곤조곤 말을 건다. 그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린 물은 작은 시내가 되어 그의 정갈한 발끝을 흘러나와 종이의 여백을 글자로 가득 채우고도 넘쳐나... 그의 시를 읽는 우리에게도 오래적 설화같은, 잊혀졌던 우리의 살가운 언어로 그 어느적에 살았던, 지금도 살고 있을 지극히 따사로운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시에는 ‘사람’과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의 시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 그것이 물건이든, 짐승이든 하물며 타는 모닥불이든 -은 다 사연을 갖고 있고 자신의 존재감만큼의 이야기를 침묵의 언어로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그의 시가 되풀이되어 계속 읽혀지는 이유이지 않을까?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어 있었다

            * 집난이: 시집간 딸                          <고방>

 

 


女僧은 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女僧>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人間보다 靈해서 열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藥이 있는 줄을 안다고


首陽山의 어늬 오래된 절에서 七十이 넘은 로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맛자락의 山나물을 추었다

                                          <절간의 소 이야기>

 

 


.......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枯淡하고 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댕추가루: 고춧가루, *아르궅: 아랫목                                                     <국수>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쭉오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장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몽둥발이 ; 딸려 있던 것이 모두 떨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모닥불>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八모알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盞이 뵈였다

......

<酒幕>

 

 

달빛도 거지도 도적개도 모다 즐겁다

풍구재도 얼럭소도 쇠드랑볕도 모다 즐겁다

......

대들보 우에 베틀도 채일도 토리개도 모도들 편안하니

구석구석 후치도 보십도 소시랑도 모도들 편안하니

<연자간>


 

 

거리는 장날이다

장날거리에 녕감들이 지나간다

녕감들은

말상을 하였다 범상을 하였다 쪽재피상을 하였다

개발코를 하였다 안장코를 하였다 질병코를 하였다

......

녕감들은 유리창 같은 눈을 번득거리며

투박한 北關말을 떠들어대며

쇠리쇠리한 저녁해 속에

사나운 즘생같이들 사러졌다

<夕陽>


 
가져온 곳: [별에 내린 꽃]  글쓴이: 투하니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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