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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야, 너도 잠을 깨렴 / 백창우

cecil-e 2005. 5. 27. 03:02


"가장 낮은 곳의 만만한 친구 그게 바로 노래"
백창우씨에게서 ‘도회의 세련미’를 기대해선 안 된다.
그는 낡은 티셔츠에 핫바지 같은 후줄근한 바지 차림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흰고무신이었다.
군더더기를 다 버리고 남은 최소한의 삶,
그러니까 자유와 자연을 그의 외모는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나더러 ‘고무신 아저씨’라고 해요.
고무신처럼 편한 게 없죠.
시냇물에 발 담그고 싶을 때 그냥 들어가면 돼요.
양말 신고 구두 신고 있으면 그거 다 벗어야 되고,
물에서 나오면 마를 때까지 기다려서 다시 신어야 되고.
고무신이 편해요.”

그렇게 자연과 닮은 이 자유인은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
<노래야, 너도 잠을 깨렴>은
작곡가이고 시인이고 가수인 그가

20년 남짓 아이들과 노래하며 느꼈던 것,
생각했던 것을 풀어놓은 책이다.
아이들에게 아이들 노래를 돌려주자는 것이 책의 요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골목에서,
고샅에서 다들 노래를 부르고 놀았어요.
아이들은 누구나 노래의 주인공이었죠.
텔레비전이 퍼진 뒤로 아이들 노래가 사라졌습니다.
가수들 흉내내기가 노래의 전부가 됐어요.
노래의 주인공은 기능적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빛깔대로 부르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노래를 잘한다 못한다는 관념이 없습니다.
다들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초등 3~4학년만 되면 움츠러들고
노래란 잘하는 애들만 하는 것으로 압니다.
악보의 틀에 맞춰 아이들에게 노래를 학습시키고,
훈련된 목소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생각을 심어준 결과죠.
이 책에서 그런 굳어진 생각들,
아이들에게서 노래를 빼앗는 고정관념을 깨뜨려보고 싶었습니다.”

알다시피, 그는 1970년대 말 스무살 무렵부터
노래로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한 노래운동가다.

통일운동·노동운동·빈민운동의 현장에서
그는 몸으로 부대끼며 그가 만든 노래를 알렸다.
아이들을 발견한 것은 그 운동의 한가운데에서였다.
“80년대 초반 경기도 성남에서 달동네 아이들을 만나 느꼈어요.
있는 집 아이들은 나름대로 문화혜택을 받고 사는데,
없는 집 아이들은 그냥 방치돼 있구나.
그 아이들을 모아 만든 노래모임이 ‘굴렁쇠아이들’이었어요.”

그 굴렁쇠아이들이 지금까지 굴러오고 있다.
빈민운동의 하나로 시작했던 그의 어린이노래운동은
이 땅의 아이들이 다 노래의 즐거움에서 소외돼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그토록 많은 음반사가 있는데 어린이노래를 만드는 음반사는 하나도 없었다.
1999년 그는 직접 ‘삽살개’라는 음반사를 차려
‘굴렁쇠아이들’과 함께 동요음반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자연스러움’을 동요의 기본으로 삼는다.

아이들의 생활 현실을 시로 쓰고,
그 시에 맞춰 가장 자연스러운 가락을 찾고,
그걸 인공의 기계음이 아닌 자연악기로 표현한다.
시냇물·새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
깡통·빈병·막대 소리 같은 생활의 소리도 곁들여진다.
굴렁쇠아이들에게도 억지스런 가성이 아닌 편안한 목소리로 부르도록 한다.
“그렇게 만든 노래는 처음엔 좀 어수선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질리지 않습니다.
조미료나 색소로 맛을 낸 음식이 이니라 된장,
김치처럼 오래 먹어도 안 질리는 음식 같은 노래가 되는 것이죠.
제 노래는 ‘개밥그릇’입니다.
아무데나 놓여 있고 누구나 건드릴 수도 있고,
그 안에 뭘 던져줄 수도 있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만만한 친구,
노래는 그런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리/9000원.


아기 발자국 / 이문구 시, 백창우 곡

아기 신은 꽃신 작은 꽃신
마당에 제비꽃 뒤란에 냉이꽃
아기 발자국마다 작은 꽃이 피고

엄마 신은 꽃신 큰 꽃신
논둑에 쇠별꽃 밭둑에 민들레
엄마 발자국마다 큰 꽃이 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