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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기 늑대의 여름 성경학교 ㅡ 권정생

cecil-e 2012. 7. 18. 23:07

아기 늑대 세 남매                        권정생

 

마을에서 10리 길인 시내미골 제일 안쪽 막바지에 본동댁 개간밭이 있고,

그 골짜기 둘레엔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그래서 그 둘레엔 큰짐승(호랑이)이 살고 있고,

다른 산짐승도 우글우글하다는 것입니다

산토끼랑 노루랑 오소리 들이 이쪽 아래 수근이네 논에까지 내려와

농작물을 헤친다고 걱정들을 합니다

 

워낙 골짜기 깊숙한 외진 곳이어서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아

산짐승들은 저희들 세상인 양 활개 치며 쏘다니나 봐요

 

 

그러나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는 본동댁 아들 부부가

아침 일찍부터 들어가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산짐승들도 낮 동안은 마음대로 나오지 못합니다

 

본동댁 며느리 춘자 아주머니는

남편인 중서 아저씨를 혼자 골짜기 밭에 보내기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꼭꼭 점심을 싸들고 따라갑니다

 

 

어떤 땐 소달구지에 함께 타고 갔다 오기도 하고

어떤 땐 그냥 걸어서 가기도 합니다

김을 맬 때에도 겁이 나서 남편 곁에 꼭 붙어 앉아 호미질을 한답니다

그러면 낮에도 골짜기 소나무 숲 속에서 큰짐승 울음소리가 나기도 하고,

여우랑 늑대 울음소리도 들린답니다

 

 

춘자 아주머니는 중서 아저씨와 정답게 얘기하면서

무서움을 떨쳐 버리려고 애를 쓴다는군요

종일 일을 하다가 골짜기 휘어진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넘어갈 즈음이면

부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옵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갓재산 모롱이에 올 때쯤이면

아주 캄캄한 밤이 될 때도 있다나요

 

 

무더운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시내미골 막바지 깊숙한소나무 숲에,

늑대네 집 굴속에서 올해 태어난 아기 늑대들이

 엄마 늑대한테 조르고 있었습니다

 

"엄마, 춘자 아주머니네 교회에서 여름 성경 학교를 한대요

굉장히 재미있다는데 우리도 보내 줘요, 네?"
콧등이 새까만 누나 늑대가 말했습니다

두 남동생 늑대가 곁에 붙어 앉아 엄마 늑대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얘들은.  또 춘자 아주머니 얘기를 엿들었구나

그러면 못써요"

엄마 늑대는 새끼 늑대들이 춘자 아주머니네 밭 가까이이까지

나가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과 짐승들이 이렇게 서로가 못 믿게 된 것입니다

"괜찮아요, 엄마.  가만히 보니까 춘자 아주머니 쪽에서

도리어 우리를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안심이 안 되는 거야

서로서로 무서워 않고 믿고 산다면 얼마나 좋겠니"

"진짜는 그런 것 같아요

아마 춘자 아주머니는 우리들을 믿고 있나 봐요"

"얘들은 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하니?

  그런다고 어디 엄마가 넘어갈 줄 아니?"

"아녜요  춘자 아주머니네 밭에서 가까운 솜밭에 오목한 웅덩이가 있거든요

우리 셋이서 거기 들어가면 딱 알맞게 앉을 수 있어요

거기서 가만히 내다보고 있으면

춘자 아주머니가 중서 아저씨한테 얘기하는 소리가 다 들려요

두 사람은 굉장히 사이좋은 부부인가 봐요

그렇기 때문에 김을 매면서도 얘기가 깨소금이 쏟아지듯 재미있지요"

"그래, 얼마나 깨소금이 쏟아지게 얘기하던?"

이쯤 되면 엄마 늑대도 잔뜩 마음이 끌려

아기 늑대에게 귀를 바싹 기울입니다

"중서 아저씨 얼굴은 엄마도 알잖아요

볕에 그을려 검지만 마음씨가 착해 보이죠

춘자 아주머니가 '여보'하면

'왜 그래애' 그러거든요"

"그래서?"

"그러곤 어쩌고저쩌고 얘기하는 거예요"

"어쩌고저쩌고 하지 말고 자세히 얘기해 봐"

"엄마도, 자세히 얘기하면 춘자 아주머니가 부끄럽잖아요"
"부끄러운 걸 너희들은 왜 숨어서 엿듣니?"

"헤헤헤..."

"헤헤헤..."

아기 늑대들은 콧등을 찡그리며 웃었습니다

엄마 늑대도 따라 웃었습니다

"엄마, 우린 춘자 아주머니하고 친하고 싶어요

그리고 사람들 모두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너희들 마음대로 되니?"

"그러니까 우릴 이번 여름 성경 학교에 보내 주면 되잖아요"

아기 늑대들은 엄마한테 못살게 졸라 대었습니다

 

 

춘자 아주머니의 얘기를 들어 보니,

여름 성경 학교라는 것은 여름 방학 동안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무용도 가르치고, 노래도 가르치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하느님의 말씀을 배운다는군요

하느님이라면 온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도, 짐승도, 나무들도, 꽃도,

새도 몯 만들어 주신 분이죠

"엄마, 그런 하느님의 교회에 우리들 늑대들도 함께 가서 공부할 수 있잖아요"

"글쎄다 위태롭지 않을까?"

엄마 늑대도 조금씩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하느님의 교회라니까 아기 늑대들 말처럼 아무라도 가면 될 것 같았어요

"위태롭지 않아요

우린 감쪽같이 사람으로 둔갑할 줄 알잖아요"

"그래, 이따가 저녁에 아버지가 오시거든 한번 여쭈어 보자꾸나"

 

 

 

그날 저녁 둥근 해님이 서산으로 넘어가고

하늘에 별들이 드문드문 나왔을 때,

아버지 늑대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늑대는 눈이 굉장히 굵은 미남자입니다

엄마 늑대와 아기 늑대가 여름 성경 학교 얘기를 꺼내자 껄껄 웃었습니다

"여름 성경 학교라면 나도 어릴 때 한번 가 봤지"

"어머나!  당신 참말이에요?"

엄마 늑대는 깜짝 놀랐습니다

"못 믿겠다는 건가, 좋아, 우리 꼬마들이 가고 싶다면

얼마든지 보내겠어"

"와아!  아버지 만세!"

아기 늑대 세 남매는 껑충껑충 뛰어올랐습니다

"그래, 며칠부터 시작한다던?"

"춘자 아주머니 말로는 팔월 첫 주일부터래요

그땐 춘자 아주머니께서도 성경 학교 때문에 밭에 못 오신다고 했어요"

"너희들 꼼꼼하게도 들었구나"

엄마 늑대도 아버지 늑대도 '호호호'   '하하하' 웃었습니다

아기 늑대들 모두모두 웃었습니다

 

8월 첫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아기 늑대 세 남매는 아침 일찍 세수를 깨끗이 하고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어떻게 감쪽같이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었는지 , 그건 비밀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둔갑술이 좋다 해도 한 군데만은 늑대의 자국이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바로 배꼽 둘레에 노란 털이 한 줌만큼 나 있거든요

 

 

"엄마, 내 이름은 무어라고 할까요?"

제일 맏이인 누나 늑대가 물었습니다

" 글쎄다 . 너도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었으니 사람 이름과 같아야겠지

하지만 우리 늑대 이름자 하나 넣어서 짓도록 하자"
" 그럼 늑자라 부를까요?"
" 늑자라, 늑자라면 아무래도 늑대 냄새가 나서 들키면 안 되니까

능자라고 하자"

"능자라고요?"

" 그래, 박능자라고 해라"

"좋아요. 박능자, 삼거리 초등하교 키 큰 남자 선생님 성하고 같군요 . 호호호"

" 그럼 우린 이름을 무어라 불러요?"

동생 늑대 둘이서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남자니까 남자 이름을 짓자꾸나"

"어떻게요?"

" 박용대, 그리고 박 성대. 어떠니?"

" 됐어요 . 늑대라는 대 자를 넣으니까, 아주 그럴듯 하군요"

 

 

 

아기 늑대 세 남매는 지각할까 봐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시내미골 꼬불꼬불한 산길을 씩씩하게 걸어서 갓재산 모롱이까지 오니,

마침 교회 종소리가 ' 땡 땡 ....' 울리고 있었습니다

 

 

교회당엔 많은 아이들이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뛰어놀기도 했습니다

문 앞에서 성경 학교 선생님이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서

찾아오는 학생들을 맞이해주었습니다

눈이 조그만 예쁜 여선생님 가슴에 '전명자'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습니다

전명자 선생님이 낯선 누나 늑대를 갸우뚱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이름이 뭐니?"

"박능자에요"

누나 늑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러 가며 대답했습니다

"나이는 몇 살?"

"아홉 살"

누나 늑대는 대답해 놓고 얼른 동생 늑대 귀에 소곤거렸습니다

"너희들은 나이 여덟 살이라 해, 응?"

동생 늑대한테는 까만 머리칼을 곱게 빗어 넘긴 남자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남자 선생님 가슴엔 '김신동'이란 명찰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름이 뭐지?"

" 박용대에요"
" 박성대에요"

" 너희들 쌍둥이구나"

김신동 선생님이 아기 늑대 형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싱긋 웃었습니다

아기 늑대 형제는 갑자기 얼떨떨해졌습니다

"예, 예에 .."

하며 얼버무리고는 그만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몇 살이지?"

"여덟 살이에요"

"그럼 유년부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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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자 선생님과 김신동 선생님이 예쁘게 명찰을 만들어 가슴에 달아 주었습니다

아기 늑대 세 남매는 잘못하면 털이 난 배꼽이 보이까 봐,

바지를 추켜 올리고 저고리 앞자락을 꼭꼭 여미었습니다

아이들이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애들이 왔다고 자꾸 쳐다보았습니다

다행히 아기 늑대들은 눈이 까맣고 귀여웠기 때문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름 방학이니까 먼 곳에서 친척 집에 놀러 온 아이들인 줄 알았겠지요

 

 

그때 마침 교회당 안으로 춘자 아주머니가

예쁜 치마저고리를 입고 바쁘게 들어왔습니다

'어머나, 춘자 아주머니 봐라!'

아기 늑대들은 하마터면 큰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시내미골 밭에서 매일보아 온 춘자 아주머니를 교회당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반갑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아는 체했다가는 큰일일 테니까,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누나 늑대네 반 선생님은 이문자 선생님이었습니다

동생 늑대들은 유시호 선생님이었습니다

유시호 선생님은 머리가 꼬불꼬불한 곱슬머리였습니다

노래도 배우고 성경 말씀도 배우고 시간은 금방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마지막 기도 시간에 박성대 늑대가 그만 '뽕' 하고 방귀를 뀌어 버렸습니다

고개 숙인 아이들이 쿡쿡 웃었습니다

 

 

오늘 아침 아기 늑대들은 칡꽃을 따 먹고 망개 열매를 따 먹었기 때문에

방귀 소리가 '뽕' 하고 예쁘게 나오 것입니다

다 마치고 나서,아기 늑대들은 교회당 뒤꼍에 있는 변소에서 오줌을 누고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시내미골 막바지에 엄마 늑대가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무사히 돌아오는구나!"

"엄마아!"

정말이지, 아기 늑대들은 여간 조마조마한 게 아니었습니다

특히 성대 늑대가 '뽕' 하고 방귀를 뀌었을 땐 간이 콩알처럼 줄어들었으니까요

늑대가 아니고는 아무도 그런 방귀를뀔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엄마, 내일은 칡꽃하고 망개 열매하고 안 먹겠어요"

" 왜 그러니?"

"쟤가 방귀를 뽕! 뀌어서 혼이 났어요"

누나 늑대가 성대 늑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오오라, 그랬군  아프론 조심해야지 그래, 오늘 무엇을 배웠니?"

"말씀대로 살자"

"하느님의 자녀로 자라자!"

아기 늑대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늑대가 돌아온 저녁엔 여름 학교 얘기로 밤이 깊은 줄도 몰랐습니다

아기 늑대들은 5일 동안 빠짐없이 나가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고는 내년 여름 성경 학교엔

시내미골 산짐승 모두모두 데리고 가겠다고 벼르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우리 교회에도 아기 산짐승들이

사람으로 모양을 바꾸고 오지 않았나 살펴보셔요

배꼽을 슬쩍 훔쳐보면 털이 나 있나 없나 알 수 있지요

그러나 있다고 해도 절대 모른 척하셔요

 

 

출처 : 동해물과 백두산이
글쓴이 : 아침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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