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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름철 갯벌 체험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고함

cecil-e 2006. 10. 2. 09:51
 

여름철 갯벌 체험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고함

갯벌에도 주인이 있다


 

김준/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선생님, 소금 좀 주세요.”

“호미하고 바구니는 안 주세요?”

“여기서는 뭐든 잡을 수 있어요.”


지난 여름 전라남도 어느 섬에서 펼쳐진 갯벌 올림픽인가 뭔가 하는 행사장에서 갯벌 체험을 하겠다며 온 사람들이 했던 말들이다. 아마도 “소금 좀 주세요” 했던 사람은 충남 어느 지역에서 갯벌 체험을 하면서 소금을 맛 구멍에 집어넣어서 맛을 잡았던 아이일 것이다. 갯벌 생태에 대한 설명이 없었으니 구멍에 맛소금을 넣으면 뭐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호미와 바구니를 찾는 엄마는 갯벌 체험장에서 바지락이나 가무락 등을 잡아 집에서 요리를 해 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참가비를 냈으니, 무료라고 해도 체험장에서 뭔가 잡아서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갯벌 교육이고 뭐고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뭐든 잡아야 직성이 풀리고, 그걸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능력 있는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는 모양이다. 물 위를 뛰듯 헤엄치는 짱뚱어를 잡겠다고 곤충을 잡는 매미채를 가지고 갯벌에 들어오는 부모들, 오랜만에 함께 모인 김에 갯벌 생물을 모조리 잡겠다며 모처럼 공조 체제를 보이는 가족들․․․. 이들에게 ‘갯벌은 체험하는 곳이 아니라 관찰하는 곳입니다’라는 말은 무식한 놈이 하는 ‘뻘소리’로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나마 체험할 공간을 제한한 지역은 갯벌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 곳이다. 갯벌을 찾는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쑤셔대는 통에 칠게․짱뚱어․농게․콩게 등 눈에 보이는 갯벌 생물들은 된통 몸살을 앓는다. 다행히 사람들의 공격을 피한다 해도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밟아대는 통에 남아나는 갯벌은 찾아보기 어렵다.



갯벌 체험장의 에피소드들


경기만의 한 어촌계에서 갯벌 체험을 하는 초등학생들을 위해 영상 교육을 한참 진행하고 있다. 화면에는 길이가 1미터가 넘는 갯지렁이가 구멍에서 나와 어슬렁거리며 갯벌 속 먹이 사냥에 빠져 있다. 그러다가 무슨 기척을 느꼈던지 순식간에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장면이 바뀌어 민챙이가 뻘을 뒤집어 쓴 채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아이 징그러워.” 엄마들이 갯벌 생물들을 보고 얼굴을 감싸며 하는 말이다. 갯벌에는 그저 바지락이나 백합만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인가. 엄마들의 이런 반응은 그대로 아이들에게도 옮겨졌다. 갯벌에 들어선 아이들은 갯벌 생태 해설사 선생님이 갯벌에서 조심스럽게 잡아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민챙이를 만지지 못한다. 엄마가 징그럽다고 한 이야기가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갯지렁이를 잡아 아이들에게 만져볼 수 있도록 배려했지만 아이들은 엉덩이를 뺀 채 눈을 잠깐 맞추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들과 엄마들을 떼어 놓는 것이었다. 엄마들은 정해진 갯벌에서 조개를 캐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갯벌과 친해지기’, ‘칠게와 갯지렁이 그리고 민챙이가 왜 갯벌 지킴이인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40여 분간 진행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 손에는 절대 호미를 쥐어주지 않았다. 오직 관찰하고 만질 수만 있다. 그리고 마무리 시간에는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조개를 캐도록 했다. 이제 아이들은 민챙이를 손에 올려놓고 엄마에게 설명한다. 지렁이와 게를 잡아 엄마에게 보여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 때 해설사 선생님이 낯선 가족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가만히 다가가 들어보니 이유는 이러했다. 이곳 갯벌에서 갯벌 체험을 하려면 정해진 비용을 지불하고 어촌계로부터 작은 그릇과 호미를 받아야 한다. 그 그릇만큼만 조개를 캘 수 있으며, 어촌계에서 정해준 체험 공간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 그릇보다 많은 양의 조개를 캐서 나오면 넘치는 조개들은 회수한다는 것을 갯벌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가족이 문제가 된 것은 몰래 가지고 들어온 큰 그릇이었다. 끝내 회수하지는 못했지만, 어촌계 관계자는 지금 캔 것만 인정하고 더 초과하면 회수하겠다고 다시 알렸다.



갯벌은 긁는 것이 아니다


여기는 갯벌 체험 마을로 알려진 고창군 하전 갯벌이다. 전국에서 바지락 생산량이 가장 많은 이곳 갯벌은, 앞에는 변산반도가, 오른쪽으로는 곰소 지역이 자리하고 있어 ‘곰소만’이라 부른다. 물이 많이 빠지면 갯벌이 이십 리까지 드러나는 이곳은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갯벌 체험 마을이다.

이곳 갯벌은 작년만 해도 3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정부 지원으로 마을에는 샤워 시설이 지어졌고, 건물 안에는 갯벌 체험을 하고 간 가족과 단체 혹은 개인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이곳 하전 마을의 갯벌 체험장은 어촌계의 마을 공동 어장 10만 평 중 1만 평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전 마을을 방문했을 때, 마침 군산의 정신 및 지체 장애인들이 갯벌 체험을 하려고 도착했다. 나중에 확인한 일이지만, 이날은 전주와 군산의 장애인들이 체험 신청을 해 일반 체험객은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갯벌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선생님들이 안내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과 섞여 있을 경우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여러 일들을 우려해서라고 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넓고 확 트인 갯벌을 처음 보는 순간 기분이 들뜨고 장난기가 발동하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혹시라도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특히 호미를 가지고 체험을 하는 탓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나은 안내를 위해 다른 단체들의 체험 신청은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전 갯벌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어떻게 조개 즉 바지락을 캐야 하는가, 그리고 바지락을 캘 때 왜 이러한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를 설명한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어린이 여러분, 바지락을 캘 때는 호미를 이렇게 갯벌에 박고 갯벌을 들어 올립니다. 절대 갯벌을 긁는 것이 아닙니다. 갯벌에는 작은 생명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캐려는 바지락 새끼들도 갯벌에 있어요. 여러분이 이렇게 갯벌을 긁게 되면 작은 것들은 모두 죽습니다. 그래서 캐고 싶은 곳보다 약간 앞쪽에 호미를 두 손으로 갯벌에 박고 그러고 나서 갯벌 흙을 들어 올립니다, 이렇게. 아시겠지요?”


어민들이 늘 작업하는 방법이지만 그것을 체험객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처음 듣는다. 늘 갯벌에 오가는 나도 선생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갯벌 체험에 참여한 자원 봉사 선생님들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은 막혀서 말라가고 있는 새만금 갯벌의 어민들이 ‘생합(백합)’을 잡을 때 사용하는 어구가 ‘그레’다. 이 그레는 갯벌 표면을 긁지 않는다. 갯벌의 표면은 그대로 둔 채 10여 센티미터 밑에 생합이 있나 없나 그레로 확인한다. 갯벌에서는 오직 폭 2-3밀리미터의 두 줄만 남기고 생합만 잡아낸다. 이런 작업 방식 때문에 새만금 어민들이 오래도록 갯벌에 기대어 살며 생합을 잡을 수 있었다. 그 뒤로는 갯벌을 긁는 아이나 자원 봉사 선생님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들 갯벌 해설사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갯벌은 어민들의 생활의 ‘밭’이다


어민들이 갯벌이나 바다를 부르는 이름이 있다. 안면도 앞에 바지락이 많이 나는 곳은 ‘눈풀’, 완도 생일도의 전복이 많이 나는 곳은 ‘목섬’, 관매도의 자연산 미역이 많은 곳은 ‘어나기미’ 등. 뿐만 아니라 철따라 부는 바람, 들고나는 바닷물에도 이름을 붙인다. 특히 어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연 상태에는 어김없이 이름이 붙여진다.

이렇게 고운 이름이 붙여진 곳은 어김없이 외부인들은 물론 어민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해조류나 패류를 얻기 위해서 갯벌이나 갯바위에 들어가는 것을 ‘입어’라고 한다. 입어는 어민들의 삶, 즉 생존과 연결되기 때문에 들어가야 할 시기와 인원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도 마을에서 이미 검증을 거친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적어도 몇 년 이상 마을에 거주한 사람이어야 하고, 마을 전체 회의(총회, 대동계)에서 입어를 동의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해진 가입 금액을 납부해야 한다. 마을 자산이 많거나 어장의 가치가 높은 마을은 가입 금액이 매우 높다. 어느 마을은 30여 년 전에 가입 금액이 500만 원에 이른 곳도 있다. 한정된 자원 때문에 무분별한 가입을 막는 장벽 역할을 해줄 조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규제들은 어가 인구가 줄어들면서 많이 약해졌지만, 요즘에도 어장의 가치가 높은 마을들은 외부인들의 가입을 거의 막고 있다. 이처럼 가입을 막는 장벽들은 한편으로 폐쇄적이며 배타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장의 사회문화적․경제적․생태적 지속성의 전제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 갯벌과 바다를 대하는 어민들도 예전 같지 않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소중한 삶의 기반이 되어 왔던 갯벌과 바다를 마치 내놓은 자식처럼 대하기도 한다. 갯벌과 바다는 사람들이 간섭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든지, 아니면 엄격한 제한을 해야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지금은 육지로 변한 경기만에 오이도라는 섬이 있다. 이곳 주민들은 공단이 조성되면서 어장과 집을 잃고, 시화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이주 단지로 삶터를 옮겨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마을 앞에 있던 어장 면허권도 알량한 보상금에 빼앗겨 버렸고, 외지인들이 마구잡이로 들락거리면서 바지락을 캐 갔다. 한 동안은 주민들이 나서서 실랑이도 많이 했지만,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이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었다. 한마디로 갯벌이 주인을 잃은 셈이다. 외지인들은 작은 새끼바지락부터 고동까지 모두 잡아 갔다. 뿐만 아니라 발 디딜 틈 없이 밀어닥치는 사람들로 갯벌은 한 군데라도 성한 곳이 없었다.

결국 갯벌에 기대어 살던 바지락․모시조개․동죽 등 조개들과, 갯벌을 지키던 갯지렁이․칠게․밤게를 비롯한 작은 갯벌 생물들이 하나 둘 오이도 갯벌을 떠나갔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갯벌에 대부분의 떠났던 갯벌 생물들이 되돌아왔다. 그렇다고 육지의 논과 밭처럼 거름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며 가꾼 것도 아니다. 오이도 어민들이 했던 것은 오로지 외지인들의 출입을 제한한 것뿐이었다. 그렇게 2년 동안 외부인의 출입을 막자 작은 바지락이 보이고 칠게가 구멍을 파고, 그리하여 드디어 갯벌이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어민들이 했던 일이라곤 ‘그냥 내버려 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갯벌에 주인이 정해지자 갯벌 생물들이 돌아온 것이다.

갯벌은 공공재라고 한다. 어느 누구라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국가 소유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화호나 화옹호 그리고 새만금처럼 국가가 정책적으로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설령 그곳에 사는 어민들이 동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갯벌을 논이나 공장 부지로 만드는 것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갯벌은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자산이기도 하다.

요즘 오이도 갯벌에는 다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렇지만 엄격하게 제한을 하고 있다. 두 번 다시 갯벌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에 맘대로 그 갯벌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불만에 차서 ‘갯벌이 당신들 것이냐’고 언성을 높인다. 그렇다. 갯벌에도 주인이 있다. 농부들이 논에 들어가 휘젓고 다니면서 풀을 매고 거름을 주지만 벼 포기 하나 상하지 않는다. 엄마들이 신발을 벗고 고추밭에 들어가 풀을 매고 콩밭에 들어가 일을 하지만 부러진 가지 하나 발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민들이 갯벌을 마구 파는 것 같지만 그곳에 사는 갯벌 생물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어떻게 호미질을 하고, 어떻게 그레질을 해야 할지 어민들은 아는 것이다. 조개가 언제 어디서 산란을 하고, 낙지새끼가 언제 어디서 자라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갯벌과 바다에 대한 이러한 어민들의 ‘생태 인지 체계’야말로 갯벌을 지금까지 지키면서 생활을 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이를 ‘육지 것’들이 알 리 없다. 어민들도 이것을 육지 것들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았다. 문화관광부도 해양수산부도 농림부도 모두, 많은 사람들이 어촌을 찾으면 지역이 활성화되고 잘 살게 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러한 소중한 삶의 지혜를 함께 지키고 나누려고 하지는 않았다. 갯벌을 찾는 사람들은 조개를 많이 잡으면 좋고, 못 잡더라도 기왕 돈을 냈으니 실컷 놀다 가면 된다는 식이다. 특히 요즘처럼 밀려드는 갯벌 체험객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갯벌은 어민들의 곳간이다


전라도의 장흥이나 강진 등 일부 어촌 마을에 가면 갯벌에 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나뭇가지나 돌을 쌓아 일종의 구역처럼 나누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개수는 옛날부터 마을에 살아온 가구 수와 거의 일치한다. 이것이 어민들이 이야기하는 ‘바지락 밭’이다. 바지락은 1년 내내 작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갯벌 수입원이자 반찬거리이다. 대부분의 갯것(바다와 갯벌에서 나는 것)들이 제 철이 있어 채취할 수 있는 기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바지락만은 철이 없고, 또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생물이다. 그러다 보니 수입도 좋아 공동 생산한 것을 똑같이 나누어 자기 밭처럼 관리하며, 필요할 때 캐서 팔기도 하고 손님 대접도 한다. 이렇게 좋은 갯벌을 가지고 있는 마을의 집값은 이웃 마을에 비해서 비싸다. 갯벌의 바지락 밭이 집에 딸려 있기 때문이다.   

고군산군도에서 갯벌이 가장 발달한 곳이 무녀도다. 특히 이곳 갯벌에는 바지락과 굴이 많아 김 양식을 지금처럼 대규모로 하기 전에는 집집마다 조개젓을 담아 팔았다. 장자도가 멸치액젓으로 유명하다면 무녀도는 조개젓이 명물이다. 당시에는 바지락이 많아 특별한 규제를 하지 않고도 맘대로 캘 수 있었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마을에서 규제를 하고 있다. 바지락의 양과 상인들의 채취 요구량에 맞춰 가구당 20여 킬로그램 동이(그릇) 2-3개로 제한하고 있다. 가구마다 작업에 참여하는 인원은 제한하지 않지만 채취량만은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다. 한정된 바다 자원을 지속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특히 이러한 규칙이 새만금 사업 시작 전후로 마련된 점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더욱 커진다.

하지만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만약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면 한 동이를 더 캘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어머니 몫의 ‘효자동이’인 것이다. 시어머니가 직접 나와 일을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 평생 갯일을 해온 시어머니 몫을 인정함으로써 갯살림하는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아버지 몫은 없다. 그러고 보면 무녀도에서는 갯벌이 ‘곳간’이나 다름없다. 집안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곳간 열쇠를 꼭 쥐고 있는 시어머니를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육지의 시간에 맞추라고 강요하지 말라


요즘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언제부터 농사를 짓는 농민들과 유명한 영화배우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한 무대에 올라 함께 하겠다며 한 목소리를 냈던가. 기억이 없다. 얼마 전 바닷가에서 만난 한 어민은 “FTA 광고할 돈 있으면 어민들을 위해 ‘갯벌에도 주인이 있다’는 광고나 해줄 것이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타결을 위해 공중파 방송을 이용해 내보낸 광고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바다에 오는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챙겨 가지고 오는 것이 바구니와 호미이며 어떤 사람들은 장화까지 가지고 온다. 다 갯벌 체험을 염두에 둔 채비들이다. 이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갯벌에 들어가는가 하는 점이 궁금할 뿐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이런 생각을 해봤다. 정부에서 이런 광고를 하면 어떨까. 유명 연예인이 바다와 갯벌에 와서 체험 활동을 하는데 어민들이 화가 나서 다가온다. 그 어민은 연예인에게 이 갯벌은 우리 땅이라며 나가라고 한다. 연예인도 질세라 어떻게 바다와 갯벌에 주인이 있냐며 대꾸한다. 이들은 결국 법률가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그 법률가의 전문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화면에는 어민들이 갯벌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그리고 갯벌 생물들이 갯벌을 지키며 살아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법률가는 이렇게 말한다.


“육지에 있는 땅처럼 어민들이 갯벌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는 없지만 이용을 할 권리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에 갯벌의 주인은 어민이며, 그래서 어민들은 갯벌 생물들을 보호하며 이용할 권리가 있다.”


이런 광고를 정부에서 해 준다면 여름철 피서객들이 집을 떠나면서 갯벌에 들어가는 것을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볼 것이다. 이를 어민들이 나서서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바다와 갯벌의 시간은 육지의 시간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해와 달이 만들어낸 ‘생태 시간’은 매일 변한다. 여기에 기대어 사는 어민들의 삶도 다양하다. 육지 것들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에 맞춰 일을 한다. 그런 탓에 이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모습과 문화는 다양하다. 요즘 하는 말로 다양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으며 무한한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 육지의 시간에 맞추라고 강요하지 말라.


<환경과생명 2006년 가을(통권49)호>

 

김준: 1963년생.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어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특히 어민들의 갯살림과 마을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 저서 『갯벌을 가다』, 『새만금은 갯벌이다』,  『다도해 사람들-사회와 민속』(공저) 등.

출처 : 환경과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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