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cil-e 2006. 8. 18. 21:52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을까, 그는 자신의 집이,
시장통 네거리가 돼버린 것을 따져본다
도공의 손에 짓이겨지고 패대기쳐지는 찰흙처럼
사방으로 몰려오는 모욕과 상처의 통로가 돼버린 집
그 밖으로 먼저 여자가 손가락질하며 떠났다
그 밖으로 살아 있는 자들의 꿈인 아이들조차
사방의 통로에 침 뱉으며 떠나갔을 때
그는 자기가 뙤약볕 아래 민달팽이가 돼버렸음을
마침내 알아차렸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무자비하게 내동댕이쳐질 수 있다니!
이 세상에 내가 거처할 곳은 없는가, 라고 외치면
마치 소나기 피하러 초동이 뒤집어쓰던 토란잎 같은
집을 지니기엔 인생이란 너무 짧아, 라고 누군 속삭였다
늘 죄만 생각하는 사람은 죄인이라고 했던가
늘 시장통 네거리가 돼버린 집만 생각할 때
집은 그가 헤어나려고 하는 악몽이 되어갔고 이웃들은
서른두 평에서 사오십 평의 집들로 옮겨갔다
모욕과 상처의 기억은 기억이 아니라 여전한 폭력,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 고 묻고 싶으나
어디에 대고 물어볼 존재조차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지붕 없는 하늘로 고개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 수많은 은빛 별보다 리어카 위의 은빛 갈치가
물크러지는 밤, 그는 시장통 네거리가 돼버린 집을 끌고
별 볼일 없는 집을 짓느라 오늘도 여전한 것이다

...고재종 시인
1957년 전남 담양 출생.
198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여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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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잎 같은 집을 가지기엔 인생이란 너무 짧아.
목을 파고드는 바람에 옹숭거리며
모퉁이에 비쭉한 내 집을 향해 걷는다.
아무것도 없던 마루에 엄마가
카페트를 하나 깔아주시고 떠나시며
그래도 여전히 허전하다 하셨다.
나는 집에 들어오니 따뜻한
전기요가 깔린 카페트가 있어 따스하다.

길은 발 아래로 미끄러지는 것.
바람은 늘 가슴을 더듬고 등을 떠미는 것.
국도변의 빈 버스 정류장 의자 위로 먼지 가득한
가로등 불빛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목도리가 없던 내가 잠깐 쉬어갔던 품을 생각했다.
그때는 잠깐 이 곳이 내 집이라고 생각했었다.
곰팡내 나는 이불과 하루종일 말할 일 없어
군내가 배인 이 작은 방을,
길 모퉁이를 둥둥 떠다니는 방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알면서도
부러 착각을 했다.

드러난 목으로 바람이 몰아친다.
목이 뭉쳤다.
슬픔이 목덜미를 따라 데굴데굴 굴러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