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일상의 하루..
군고구마처럼 익혀지던 그날...
cecil-e
2006. 2. 5. 22:05

그날은...
한우리 본부에서 봉사단 선생님들을 위한
교육이 있던 날이었다.
오전에 노인복지에 대한 강의를 듣고,
선생님들과 맛있는 밥으로 배를 불리며 참 많이 웃었다.
바자회에서 산 책 한권을 들고
아이들을 만나러 총총총 5호선에 몸을 실었다.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오를때마다
담장 너머로 얼굴을 내밀며 반겨주던 꽃 나무들..

터벅터벅 걷는 골목길엔
늦 가을 찬 바람에 이파리 다 떨군 감나무만
꽃불처럼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깨를 움츠리며 보육원 마당에 들어설 때 햇살이 가득했다.
공놀이하는 작은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군고구마굽는 고소한 냄새가 마당 가득 달게 구워지던 날!
"선생니임, 안녕하세요?."
묵직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정균이와 정현이었다.
"어머나, 너희들 이렇게 컸어? 몇 학년이야?"
"고 3이요."
"뭐, 고3? 버얼써?"
처음으로 봉사가 뭔지도 모르며 찾아와 쭈빗거릴 때
내 팔에 엉기며 반겨주던 나의 첫 아이들...
개구짓하던 4학년 때 처음으로 만나
마땅한 교실이 없어 보따리 가방을 들고
교실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동화책을 읽고 나누었는데...
스승의 날이라고 크레파스로 그린 종이꽃을 가슴에 달아주며
"선생니임,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우리랑 같이 있어요 네?"
하던 그 작은 아이들이었는데...
소희.. 지향이.. 율이.. 정희..또...모두모두 보고싶었다.
파스텔처럼 바랜 꿈같은 시간들이 아스라히
내 뇌리에 지나가고 있었다.
'내 가슴속의 작은 아이들이
저렇게 건장하고 늠름한 청년으로 자랐다니...'
가슴은 뭉클했고, 내 눈은 햇살에 반짝였다.
"선생님, 이거요!"
신문지에 싸서 건네주는 노랗게 익은 군고구마를
두 손으로 고맙게 받아들고
"꼭 대학 가야한다.너희들..열심히 해.."
하며 예쁘게 단장된 교실로 들어왔다.
방송을 타고 울리는 소리에 우당탕탕 들어오는
지금의 아이들...
"선생니임~ 지난 주에 왜 안오셨어요? 네? 네?"
하며 달려오는 은별이,용철이, 진영이,재성이,동화,선미,선홍이,성태~
내가 일이 생겨 '오늘은 걸러야겠네...'
하며 빗겨가는 시간들을 아이들은 이렇게나 기다렸나보다.
재갈거리며 작은 사각 초콜릿을
내 주머니에 건네주는 아이들!
간식으로 나온 초콜릿을 하나씩 남겨둔 모양이다.


"이거 이따 먹을게 고맙다아~"
미안한 마음에 동화책을 펴고 더 열심히 들려주고 나눌 때
투박한 계란박스위로 맛있게 익은 군고구마가
마당에서 교실로 배달되었다.

"와아! 맛있겠다아~"
아이들의 환호성과 함께 호호불며
군고구마를 먹으며 동화책 읽던 그날!
체할 것 같아 천천히 먹는 나를 위해
재빨리 일어나 종이컵에 물을 떠다 주던 용철이...


지난주에 공책에 쓴 숙제 다 했다며 한 손에 고구마들고
한 손에 공책들고 열심히 읽던 재성이와 선미...

동시를 썼다며 낭송하는 진영이와 동화,

꿈이 만화가라며 예쁜 공주를 그려온 은별이
어디를 가야하는데도 좀 더 있다간다고
버팅기던 선홍이와 성태


이 푸른 아이들이 있어 나도 푸른 어른아이인거다.
그날은 오랜만에 연장 수업을 하며 즐겁게 많이도 웃었다.
교육일지를 건네고 돌아나오는 내 팔엔
아이들이 서로 매달렸고,
수업이 끝나면 습관처럼
작은 구멍가게를 향해 달려갔듯이
야트막한 언덕길을 우리는 우루루 달려내려갔다.
주머니속 동전을 털어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려주자
"선생니임 다음 주에 꼭 오셔야해요.꼭요."
하며 다짐을 받는 아이들..
"그래, 빨리 들어가아~, 담주에 보자"
"네에!"
아이들의 뒷꼭지가 골목길을 돌아설 때야 나도 돌아섰다.
'띄엄띄엄 글을 읽던 저 아이들도 금세 크겠지..
벌써 4학년이 되네...'
손을 찌른 주머니속에 달콤한 초콜렛이 잡혔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질때 내 마음도 파란불이 되었다.
'저 아이들에게 언제나 파란불이고,
초콜릿같은 선생님이 되었으면...'
걷는 내 얼굴에 저녁해가 빨갛게 내려 앉고 있었다.
...
그날은 그렇게...
군고구마처럼 고숩게 내 마음도 익혀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