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일상의 하루..

나른한 시간을 보내며...

cecil-e 2006. 1. 7. 17:24


창문을 내다보다가...
봄날의 산수유를 생각했다.
유년의 뒤란에 푸르게 서 있던 그 산수유나무를...
네루다가 시를 만난 이야기를 읽다가
일포스티노의 한 장면이 떠올랐고,
이원규님의 조각문장을 읽으면서
그리움이 출렁출렁 강처럼 가슴에 들이찼다.

온전히 해야할일들
이대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데...
가만히 앉아 이 노래를 듣는다.
피자도 만들어 엄마한테도 가야하고,
장도봐서 저녁 준비도 대강 해야되는데
문 밖으로 나가기가 너무너무 싫다.
내 책상위 유리병속에 담긴 호두만
내 입속에서 자꾸만 자꾸만 잘려져 나간다.

새해를 맞고,
일주일이 이렇게 흘러가고..
아무일 없듯이 시간은 또 바람처럼 지나간다.
헝겊 다이어리에 깨알같은 글씨로
그 날의 단상을 메모하고,
내 뇌리속의 풍경을 기록했다.

어제의 외출이 행복했던 만큼
내 몸은 나른하게 지쳐있다.
저녁 내내 이불속에서 그렇게 누워
티비만 봤다.
편하게 누워 목소리 듣고 싶은...
'음...정말..그랬는데..'
그때 마다 긴 싸아함만...
아무도...
혼자 미지근한 웃음을 흘리고 나 혼자 끄덕였다.
'그게 다른거구나...' 싶었다.

채널을 돌리며 다른 것에 집중해야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대한 이야기를
졸다가, 듣다가,
여러시간 휘청거리며 연체동물처럼 흐물거렸다.
그러면서도,
난 왜 잠들지 못했는지 모른다.
'입양'에 대한 다큐를 보면서
그들의 눈동자를 보며 가슴이 너무 아팠다.
다시 내 자신을 보며 감사했다.
부시럭거리며 늦은 밤에 일어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음만 바빠하다가 결국 잠이 들었나보다.

.
.

아침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예지는 파리의 한국인 민박집이라고 했다.
2주의 여행이라 루브르박물관에 가서 여유있게 보려고
모나리자는 남겨뒀다고 했다.
클림트전도 원화를 직접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쪼개어 돈을 모으고, 아껴서 더 싼 집을 찾아 보겠다는
아이를 보며 기특했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뚜뚜 거리며 끊어졌는데...
'음..걱정이 된다.'
녀석 핸폰 충전 좀 많이 해 놓으라니까..
밤에는 아주 살벌하다고 해서 나가지 말라고 일렀는데...
문득,
많이 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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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랜만에 스시부페에서 너무 욕심내어 먹은 탓에
늦은 시간까지 먹는 냄새는 간사하리만치
맡기도, 보기도, 싫었었다.
지금은, 수지도 나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그 스시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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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본 'Footloose'는 신선했다.
아카데미상 수상에 빛나는 딘 피치포드의 원작을
‘타이타닉','왕과나’의 프로듀서 팀이 새롭게 탄생시킨 작품.
시대를 초월하여 기성세대와 젊은세대의 갈등을 춤과 노래로
풀어내는 이야기인데 반항과 억압, 사랑과 상실의 고통을
그들의 소통으로 결국 풀어내는 작품이었다.
1부 2부동안 지침의 기색없이 열정적인 배우들을 보며
그들의 열정에 감동했다.
그이 덕분에 잘보고,잘먹고,
주머니에서 꺼내주는 해금연주곡인
꽃별의 시디까지 잘 챙겨들고 들어왔던 어제..
반디에서 질펀히 앉아 책은 많이 못 봤지만
행복한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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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어둑어둑해진다.
귀찮아도 장보러 나갔다와야 겠다고 생각하는데
언니 전화를 받았다.
잠시 돌아야겠다.

오늘은 더 미루어서는 안 될것 같다.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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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부터 이 음을 혼자 흥얼거린다.
기분이 조금씩...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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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걷다 보면...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때가 있고,
또,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조차 멍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그리워하다 보면
문득,
그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바로 그 순간이 기다림의 절정입니다.
기다림은
대문 앞에서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누군가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 이원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