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일상의 하루..
첫 눈이 내린 주말이 지나갔네...
cecil-e
2005. 12. 5. 15:23


토요일 수업하고 걸어오는데
희끗한 무언가가
공중을 휘휘 돌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거 눈? 눈이 내리는 거 맞아?'
정말 올해들어 내가 만난 첫 눈이 었다.
조금씩 많아지며 내리기 시작했다.
제법 어둑어둑 해지는 시간인데..
아~ 얼마나 좋던지..
일도 끝나고 걸어오는데 눈을 만나다니...
주머니속 핸펀을 열었다 닫았다...
그러다 다시 넣고 연둣빛 녹차 호떡을 샀다.
종이 봉지에서 하나 꺼내 먹으면서
행복하게 걸어왔는데...
종일 굶다가 먹은게 잘못된건지
첫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난 침대에서 끙끙 배앓이를 했다.
결국, 그이가 손을 따주고
베란다에 서서 함박눈이라고 소리를 쳐도
겨우 내다 봤을 뿐 좋아하지도 못했다.
보려던 '직지'를 보고자려고
아프면서도 쿠션을 껴안고 뒹구르며 잠을 안잤다.
결국 보고나서 정신없이 잤나부다.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도 되는데
수지가 일어능력시험보러 가는 날이라
그이도 프리젠테이션땜에 새벽부터 나가며
꼭 택시타라고 했지만
얼었던 눈이 미끄러워 전철이 빨랐다.
몇 시간 눈을 붙이다 겨우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너무 힘들고, 춥고, 아프고...
아이는 혼자 가도 된다는데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수지 시험보는 동안 읽을 시집 한권과
수정해야 할 원고만 가방에 챙기고
용산공고까지 전철을 탔다.
음악을 들어도 힘들고
따슨 방에 누워 잠만 자고 싶었다.
매서운 추위에 종종 걸음으로
시험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속으로
수지랑 걸으면서 '참 열심히들 사는구나' 싶었다.
어른들과 대학생들과 시험보는 중학생인
내 딸이 기특하기도 하고...
수험표를 챙겨 5실에 데려다 주고
복도에 서성이는데 목도리를 칭칭 감고
안경만 써서 내가 학생인 줄 알았나부다.
빨리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ㅎ
우리 딸이 시험본다고 했더니
위 아래를 휙휙 훑어본다.
'히~ 겉만 애들같지 속은 고장났어요~ '나 혼자 중얼거렸다.
12시 30분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수지는 엄마아프다고 신경쓰인다며 가란다.
걱정해주는 전화를 받고 한 시간을
복도에서 원고 수정하다 결국 수지에게
말하고 먼저 왔다.
들어오면서 장을 보고. 옥수수도 샀다.
하루동안 배를 곯았더니 뭐든 맛나 보였다.
겁나서 천천히 오래오래 씹었지만
몸은 여전히 다 아팠다.
따뜻한 방~ 김치찌개를 끓이고
아이를 기다리며 조금 잤다.
'엄마가 미안하다. 기다려줘야 하는데..'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참 착하구나 싶었다.
시험은 그럭저럭 잘 봤다며 돌아온 아이와
밥을 먹고 종일 잤다.
땀을 내며 커튼을 치고 아무 생각없이 그저
꿈속의 나라에서 헤멨다.
자도자도 더 아팠지만... 그래도 쉴 수 있음이
좋았다. 일요일도 없이 일하는 그이에겐
미안했지만 난, 저녁시간 즈음에 일어나
세탁기 돌리고, 포럼 방에 다음달 프로그램 올리고,
밤 미사를 갔다.
추워서 꾀가 났지만 지난 번 너무 고생해서
무조건 달려갔다.
주님 안에서 또 일주일을 정리하고
다시 일주일을 희망으로 살아야지..
언니를 만나 같이 왔다.
늦은 밤, 그이랑 떡국을 먹으며
묵주기도를 했다.
다행이다. 아침 일찍 시엄마 전화를 받고,
걱정해주는 동생 전화를 받고,저녁쯤 가려 던 병원부터 갔다.
피로가 누적되어 온 것이라니...
쉬면서 가끔 치료받으러 가야겠다.
엄마한테 달려가 차려주는 밥먹고
음악을 듣는다.
커피도 맛있다.
큰 병이 아니여서인가...
아직 몸은 개운치 않지만 기분은 가볍다.
창 아래~ 아직 녹지 않은 눈...
햇살에 눈이 부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