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일상의 하루..

흐림이었지만 흐림은 아니었어...

cecil-e 2005. 11. 26. 22:01


어젠 종일 흐림이어서...
몸을 챙기느라 합평이 끝나는 대로 서둘러 집으로 왔다.
따뜻한 방에 누워 아직 초저녁이란 시간에 행복해졌다.
무엇보다 넉넉한 시간과 여유로움이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것 처럼...
아직 들어와 있을 거란 생각을 못한 친구가
책을 건네 주려고 늦어지는 시간에 전화가 왔다.
'아~이런...진작에 말을하지...'
시를 쓰면서 내 생각을 했다는 것에 기분이 참 좋아졌다.


병원에 다녀온 결과는 아직이지만
빈혈이 좀 있다고 철분을 먹으란다.
수지한테 '엄마가 몸이 하나씩 고장이 나나부다' 했더니
낄낄대며 웃는다.
걱정은 되는지 빨리 병원에 전화해보라고 야단이다.
'그래, 무엇보다 소중한 건 건강인데...나는 너무
내 몸을 혹사시키는구나...'싶어 그냥 편히 놀았다.
예지가 잘 하고 있어 힘이 난다.
그렇게 편한 시간을 누리다가 푹~자고나니 좀 개운했다.

.
.
.

벌써 주말이고...
난, 수업준비를 해 놓은 상태라 아침을
느즈막히 만두국으로 해결하고
신문을 스크랩했다.
수지가 진학문제로 고민하는 걸보니 내가 너무 무심한가 싶어
오늘부터 잔소리한다고 했더니 제발 좀 그래달라고 한다.
하긴, 이런 엄마가 어디있어... 그저 미안하다.

.
.

흐렸다.
집에서 아이들 만나고 한 시간 수업을 위해
옷을 챙겨입고 걸었다.
걸으면서 친구와 통화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아닌 것 같아
바람과 노래와 낮게 내린 햇살만
어깨에 얹고 걸었다.
노래를 들으며 걸으면 기분이 그 노래에 따라 같이 간다.
'그래...그럴 수 있어...'
마음이 스산하면서도 흐림은 아니었다.

서둘러 그 숲길을 만나고 싶었다.
지난 주에 만났던 그 나팔꽃이 궁금했다.
기대는 안하고 걸었지만...
그 근처에서 서성이다 쓸쓸해졌다.
바싹 마른 모습으로 흔적도 보이지 않더니...
한 송이만 피실피실 철망에 매달려 떠나고 있었다.
아직은 초록 이파리...숭숭 뚫린 구멍을 하곤
양철망에 얼굴을 내밀고 아프게 매달려 있었다.
'가을이 가듯이 또 한참을 기다려야
볼 수 있겠구나'

하늘은 자꾸 흐렸다.
노래도 따라 슬퍼졌다.
내 걸음도 휘청거렸다.
그랬다...

.
.

천천히 걷는데...
못생긴 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좋아라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돌아서 다시 그들의 뒷 모습을 훔쳐보면서...
'저들은 지금 참 행복하구나..'싶었다.
모습이 무에 그리 중요하리...
사랑에 행복한데...
얼마전 보았던 '아름다운 동행'이 떠올랐다.
다시,
스산한 기운을 받으며 하늘을 보았다.
주리가 수업하면서 비 온다고
꼭 우산 챙기라고 했는데...
깜박하고 왔네... 설마 했더니
수업하고 나오면서 후드득 떨어지는 빗 방울에
머리만 두 손을 얹고 그대로 맞았다.

연한 해의 기운이 아직은 도는데..
빗방울이 하나 둘~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친구에게 무슨일이 있는가 싶다가...
신현림 시인이 한 말이 뇌리속에 가득차서
공기에 내 웃음을 날렸다.
또 다른 생각들이 휘적휘적 거려서
얼른 마음을 내려놓고...
빗줄기가 세지는 바람에 택시를 탔다.

벌써,어둡다...
오늘은 조금 아프다.
그래도 여전히 앉아 있기가 힘들다.
산후조리를 잘 못한 탓인가...
몸이 자꾸 움츠려든다.

.
.
.

고마운 동생들이 챙겨주는 예쁜 선물로
진종일 난 해바라기였다.
월요일엔 앤을 만나겠구나...

이제 좀 누워서 미뤄뒀던 영화를 봐야겠다.



아프지 마..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신은 모를 거야
내가 얼마나 당신을 보고 싶어 했는지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 했는지
당신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수화기를 들었다가 놓곤 했지
왜 그렇게...
왜 그렇게...
나를 그립게 만드니
하지만
난 이런 날이 오리라고 믿었어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아마도 나는
이제껏 숨을 쉴 수 있었을테지...


...김하인 장편소설 '국화꽃 향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