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일상의 하루..

찬 바람 불던 날...

cecil-e 2005. 11. 8. 23:37


어젠...
가을이 가기전에 가을을 만나고 싶었어.
훌쩍 떠난 곳에서 만나지는 사람들...

오랜만에 바라 본 낯익은 공기와 거리,
국화 밭 속에 불어오는 바람소리,
키 큰 감나무 아래 우물,
허허로운 황토빛 들녘,
비닐하우스 안에서 깨를 털고 있는 할머니,
키안에 손 담그고 콩을 고르던 두 노부부,
흙 담 안에 핀 들꽃무리..
얼마만에 바라보는 집들인가...
얼마만에 서성이는 이 풍경인가...
디카에 담고, 내 안에 그리고, 내 뇌리에 적었던
그 가을 시간들...

덜커덩 거리며 돌아오는 창가엔
노란 불빛만이 그리움을 다시 내려 놓았지..
여러 사람들이 웃었던 그 자리에 추억하나만
덩그러니 나뒹굴겠지...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기억할까..
내 내음이 남아있을까?
'늘 이래 나는...또 하얀 아픔만 가을처럼
쏟아놓고 내 안에 그렁그렁 고여오는 생각들을
잡았다, 당겼다, 버렸다, 그러고 있었어..'

헌 책방에 서성일 때
고마운 쌤 전화는 '희망의 창문'이었어
얼마나 고맙던지말야
빨리 내 자리에 앉고 싶었어
'아~맞아 바람을 만나서 일거야
그래, 그거였어."
달음박질로 달려와 끄적거리고 싶은 충동을
차분히 진정 시키느라 가슴은 끄끄 거렸어.
헌 책방에서 만난 시집 세권
어쩜, 이리도 내 맘을 아는건가..
이중섭과 구상시인의 우정으로
구상시인의 시를 꼭 읽고 싶었는데..
차 신부님 강론을 들으면서도...
그 분을 꼭 글속에서 만나봐야지 그랬는데...
천상병시집과 박목월 유고시집까지 들고오니
행복해질 수 밖에...

.
.

비가 온다고..
그이가 늦은 밤에 무섭게 비가 내린다고 했어
창문을 닫으면서 젖어서 추울 이파리들을 생각했지..
그래,순환인거야..
언제가 되는지 모르는 시간!
그래서 늘 깨어있어야 하는 거겠지...

.
.

오전을 노트북 안에서 이야기 만들며 보냈어
사내아이도 되었다가, 엄마도 되었다가,
유년의 뜰을 뒹굴다가, 동무랑 뛰어 놀기도 하다가..
오후를 훌쩍 넘기면서도 배고픈 줄 몰랐지.
사랑을 안고 있어서인가
집을 나가기 전에서야 에너지를 위해
꾸역거리며 혼자 밥을 먹었지...
커튼을 그대로 두어서인지 유키는 종일 쿨쿨~
가방을 챙기고 나가는데 몸이 움츠려들었어.
'아~춥다 추워~'
아직 내 옷장 속 가을옷들은
한번도 가을 밖 나들이도 못했는데..
'뭐야 벌써 배웅하고 마중할 준비를 해야하는 거야?'
벌써 겨울을 두르고 싶진 않은데...

종종 걸음으로 노래를 들으며 걸은 그 길...
3학년 아이들을 만나면 나도 3학년이 되고.
아이들이 많이 웃으면 나도 따라 웃고,
재잘재잘 이야기도 들었어
어머님께 일기장을 부탁하고 걸어나오는데
고마운 문자 날라왔지..
'아~좋아라~'
제자리 걸음으로 뛰고 있는데
목소리 만으로도 더워지는 거야~

버스에 올라타고 휙휙 지나는 거리
그리고 다시 숲길을 지나는 시간
창살 사이로 얼굴 내밀며 웃고 있는 나팔꽃!
얼마나 더 피어 있을래~
곧 사라질테고 고동빛 가는 줄기만 바싹 말라 있을테지...

이 노래 흥얼대며 빠르게 걸었어
회색 하늘에 이르게 내려온 초승달인가
반쪽 달이 예쁘고 선명했지
어둑한 길을 나와 동행하며 별도 보았어
내 마음에 똑 떨궈진 찬 그리움일거야
집에가서 따숩게 안아야지..

날이 어둡고 바람이 차가워.
세상을 삼킨 어둠...
그 안에서 오늘도 귀하게 살았네.
복음묵상 들으며 혼자 먹는 저녁!
말씀과 함께 먹은 탓인가...
고요히 들어와 영혼이 통통 해진 느낌야

찬 바람 불던 오늘처럼..
내일도 꼭 그 만큼만 가을이 지나갔으면..그러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