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일상의 하루..

바람불더니 비오네...

cecil-e 2005. 8. 10. 19:37


흐린 저녁시간...

갑자기 불어주던 바람과 연이어 나타난 시원한 빗줄기...
열려진 창문을 닫고 스폰지처럼 푹신한 카스테라와
뜨거운 커피를 들고 방으로 뛰어오니
유키가 졸졸 따라온다.
이 녀석 땜에 암것도 자유롭게 먹지를 몬하겠다..
내 발치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입만 바라본다.ㅋ
딴청을 부리다 결국 손으로 푹~떼어주니 금방 꿀떡~이다.
"이그~ 모얌마아~ 씹어야지..."
녀석은 고개만 갸웃거린다.
"에효~그래 먹어라먹어~ " 서너 번 주고나니 녀석이 사라졌다.
수지가 엄마아~ 하는 소리에 보니
이 녀석 뒷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다가 비를 쫄딱 맞았나보다.
으흐흐흐흐~~
얼굴이 다 젖어서 완전히 비맞은 복슬강아지다.
냉바람 드라이기로 보송하게 말려줬다.
또 뼈다귀 하나 들고 거실로 나가 이리저리 뛰고 논다.
'그이가 오기전에 빗질을 멋지게 해줘야 할텐데...'
하긴 모, 내가 해줘도 그인 집에 오면 유키부터 붙잡아
손질을 해준다. 마치 장난감처럼 말이다...
녀석은 좋겠다. 무슨 걱정이 있으랴~
.
.
.

천둥이 치더니 바람과 함께 빗줄기가 세졌다.
급하게 뛰어서 창문을 닫고, 빗방울 쬐금 들어오게
비스듬히 열어놨다.
빗소리가 또로록 또로록 거린다.
양철 슬레트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아주 맑을텐데...
그 소리가 갑자기 듣고 싶어진다.
어제 본 그 사진들이 눈에 아른 거린다.
골목 풍경아래 짧은 단상들을 써놓고 싶을 만치
낮은 그리움들이 잔뜩 묻어 있었다.
다시 가서 만져 보다가 갖고 싶어지면 들고와야겠다.
.
.
.
유리창 가득 물방울이 즐겁게 논다.
수지랑 공부 해야 하는데 난 이러고 놀고 있다.
요틈을 타서 예지방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녀석
'빨리 책 읽어라~'하면서도 이 게으른 엄마는
이대로 더 있고 싶어 빈말만 바람에 흐릿하게 날렸다.
'에라 모르겠다~ 좀 있다가 금순이 보고 하지모~'
오후가 가고, 저녁이 가고,
빗소리와 함께 어둠이 내리려고 한다.
.
.

천둥이 무섭게 친다.
세상이 젖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다보니
갑자기 무서운 생각도 든다.
이 비로 힘겨운 사람들이 있으면 안되는데..

더 흐리고 어두워졌다.

예지가 깼다.
자루소바 해달란다.
벌써,저녁먹어야 겠네...
휴~


손에 묻은 모래가 내 눈으로
들어갔다. 영이는 제 입을 내 눈에
갖다 대고 불어주느라고 애를 썼다.
한참 그러다가 제 손가락에 묻었던 모래가
내 눈으로 더 들어갔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영이도 울었다. 둘이서 울었다.
어느 날 나는 영이보고 배가 고프면
골치가 아파진다고 그랬다.
"그래 그래"하고 영이는 반가워 하였다.
그때 같이 영이가 좋은 때는 없었다.
우정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하품을 하면 따라 하품을 하듯이
우정은 오는 것이다.

... 우정(友情) / 피천득의《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