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포럼

7월 제비꽃 포럼

cecil-e 2016. 8. 29. 22:51
7월 제비꽃 포럼 (7/14 목요일)










매체 – *일상 / 칼 라너
*리틀 포레스트 (여름, 가을)

시작기도 – 즐거운 나의 집 / 신민아

반가워요 잘 지내나요.
요즘은 바쁜가요?
또 만나요.
다음번엔
맛있는 밥을 먹어요.
전화할게요.
가끔 연락해요
안녕. 안녕.
즐거운 나의 집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얼굴 좋아졌네요.
하는 일은 다 잘 되나요.
모두들 건강한가요.
다음 만날 땐 꼭 술 한잔해요.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즐거운 나의 하루.
안녕. 안녕.


T – 일상. eat.

*나눔

-‘일상’에서 자신이 첫 번째로 두는 것은? (일, 걷기, 웃기, 보기, 먹기, 잠, 앉기.)

-‘먹는 것’의 중요성.

*나만의 비법 요리(건강식, 추억의 요리. *건강-스트레스, 면역력 강화, 긍정적.)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

-자기 인생과 마주 하는 날!(변화)

*‘일상’을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몰랐던 소중함.(우리의 일상은 기적이다.)

*귀한 몸 하나하나에게 말 걸기.(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떠오르는 성서 구절, 하이쿠시.

*끝기도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 하나를 잘 넘게 해 주었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 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게 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을 삶을 살게 합니다.


*9월 제비꽃 포럼(8월은 방학)

매체 –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 / 헨리나윈
허니 / 카플라노글루 감독의 대표작인 ‘유수프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영화 <허니>는 세미 카플라노글루 감독의 대표작인 ‘유수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이 3부작은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시인의 일대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조망하고 있다.
첫 작품 <에그>는 칸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공식 초대되었으며,
두 번째 작품 <밀크>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놓고 경합을 벌였고,
마침내 세 번째 작품 <허니>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와 더불어 인간의 영성과
인생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3부작은,
또한 주인공이 어머니와의 관계로부터 벗어나
독립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허니>는 <에그>(2007), <밀크>(2008)를 잇는
세미 카플라노글루의 유수프 3부작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제작연도로는 마지막이지만
주인공인 유수프의 성장 과정 중 첫 부분인 유년 시절을 다루고 있다.

<에그>에는 마흔살의 시인 유수프가,
<밀크>에는 열여덟의 청년 유수프가 등장하고
이 작품에는 여섯살의 유수프가 등장한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시인 내면의 근간을 이루는 시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듯하다.

앞의 두 작품이 유수프가 어머니와 어떻게 분리되고 독립하며
사별하게 되는지를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아버지 그리고 인류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대자연과
소년 유수프가 관계 맺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수프의 하루는 마호메트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빠는 글을 읽는 아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웃으며 경청하고
아이가 지난밤 꿈에 대해 큰소리로 말하려 하자
꿈이야기는 남들이 들으면 안된다며 아이의 입에 귀를 갖다대준다.

부자간의 귓속말은 꿀처럼 달콤하고 서로를 단단하게 끌어안은
손길에서 느껴지는 유대감은
세상 어느 것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 유수프는 사뭇 다르다.

성인(聖人)의 글귀를 거침없이 읽어 내려가던 아이는
교실에서 동화책 제목조차 읽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통에 급우들은 키득대고 읽기를 중지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책을 잘 읽으면 받는 배지는 늘 다른 아이들의 몫이다.

또래보다 작은 유수프를 걱정해 엄마가 따라놓은 우유 한잔도
아빠가 대신 마셔주지 않으면 밤새 식탁 위에 그대로다.

늘 유수프를 이해해주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보호해줄 것 같던 아빠는 어느 날 꿀을 모으기 위해 더 깊은 숲으로 떠난다.

늘 양봉을 하던 곳에 더이상 벌이 모여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틀이면 온다던 아빠는 며칠이 지나도록 오지 않고
달콤하고 풍요롭던 유수프의 유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유수프의 학교 생활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영화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포착하지 못하는
사려 깊은 아이들의 섬세한 감성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 영화들이 동심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영화는 그 완벽한 세계가 어떻게 파괴되는지에 관심을 둔다.

감독은 동심의 세계가 파괴되는 과정을 보여주되
관객이 감정에 함몰되는 대신 애착과 분리, 삶과 성장에 대해 사유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아버지 대신 거대한 나무둥치에 안긴
유수프의 마지막 모습은 삶의 비의를 알게 된
유년의 슬픔과 삶에 존재하는 다른 위안들에 대한
깨달음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