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cil-e 2012. 6. 1. 00:34





1

내가 “새들은 왜 날아다니는가”를 물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바보는 지루해” 하고 대답하셨어요.
나는 다음부터 궁금한 것이 있어도
선생님께서 지루해 하실까 봐 질문을 않기로 했어요.


2

선생님께서 시험 점수를 발표하시던 날
나는 꼴찌가 되어 있었어요.
내 시험지는 온통 나비 투성이였으니까요,
꼴찌가 된 건 아주 당연한 노릇이지요.
아이들은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낄낄거렸고,
나는 그 날부터 꼴찌가 되어갔어요.


3

엄마가 잊지 않고 챙겨 주시는
책가방과 도시락과 신발주머니를 들고 와서는
어물어물 머릿수나 채워 주고 청소나 열심히 하고
사랑하는 반 친구들을 위해
가끔 웃음거리도 되어 주는 게 나의 임무랍니다.

꼴찌는 어디에나 꼭 있게 마련이지만
아무나 하는 건 아니랍니다.
꼴찌하기가 얼마나 힘들다구요.


4

어쩌다 선생님께서 나를 부추겨 주시려 하시면
아이들은 눈들이 빨개져서 방정을 떨고
자주자주 구박을 받을 때마다 신이 나서 법석이지요.
천재들은 원래 은혜를 모른다구요.


5

시작이 나쁘면 끝까지 나쁜가 봐요.
어제는 선생님께서 늦으셨고 오늘은 내가 늦었는데,
말은 안 했지만 길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늦었는데
회초리는 선생님 것이고
매맞은 빨간 자국은 내 것이었어요.
아무래도 생각이란 건 안 하는 쪽이 편해요.


6

내 맘 속엔 아무런 근심도 없는데
선생님은 내 머리를 아프게 하시지요.
쓰는 글자와 읽는 소리가 달라야 하고
나누기는 곱하기로 바꿔야 하고
쓸 것 없는 일기까지 써야 하니까
머리가 지끈거릴 수밖에요.

그렇지만 무슨 상관인가요?
지구가 둥글건 길쭉하건 땅에는 곡식이 자라고
하늘은 또 저렇게 맑아 있잖아요.
꽃잎이 산성이건 염기성이건
나비들은 즐겁게 춤추고
벌들은 또 하루종일 저렇게 윙윙거리잖아요.


7

선생님!
아무도 사랑할 줄 모르는 꽉 막힌 천재들보다
들꽃과 멧새와 풀벌레까지 사랑하는 나를
친구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내 이름을 좀더 부드럽게 불러 주세요.
그리고 한 번쯤 만세도 불러 주세요.
“꼴찌 만세! 만만세!”라고.

...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류선열님 동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