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와 시의 숲...
영혼이 드나들던 창..
cecil-e
2007. 10. 7. 21:49


사람의 집에는 창이 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의 집에는 밖을 향한 창이 있었다.
어쩌다 우리는 흘러간 시대의 움막을
외딴 산 속이나 해변에서 대할 때가 있다.
간신히,
그저 단촐한 식구가 비바람 피해서
살 수 있는 그러한 의지처.
흙으로 이겨 바른 벽과 갈대를 엮어 인 지붕.
이제는 사람이 떠난 지 오래인
그러한 집에도 어김없이 창이
방의 동편이나 남쪽 벽에
의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비록 투명한 유리가 아닌 창호지나
비료 푸대 종이로 발라져 있는 창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 영창에
어린 가족들의 기쁨과 슬픔, 걱정과 안도,
희망과 좌절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창이 희부옇게 밝아오면
아침 힘줄이 돋아났고,
창에 달빛이 젖어들면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큰 바람, 작은 바람, 지나가는 소리를
그 창으로부터 들었을 것이고
가뭄 끝에 기다리던 빗방울 소리도
그 창으로부터 맞아들였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 날 감기가 들거나 혹은
밖에 나가면 안 될 일이 생겼을 적에
하이얀 창호지 창에
손가락 구멍을 내놓고 내다보던
그날의 바깥 풍경을 잊지 못한다.
거기에 눈을 대고 보던
하늘과 땅과 나무와 새.
거기로 바라본 별과의 대화가
후일에 시가 되었고
거기에서 달과 한 약속이
장래를 결정하기도 했었다.
창이란 곧 몸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라
영혼이 들고 나는 문인 것이다.
... 정 채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