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일상의 하루..

아침 숲그늘을 찾아...

cecil-e 2006. 10. 25. 13:13


숲길을 걷고 싶어
모두를 보내고 츄리닝에 후드티를 걸쳤어요.





작은 아이가 학교 가려고 나오면서
추운데 이불속에서 그냥 잠이나 자지
산에 간다며 고생을 사서 한다고 구시렁 댑니다.

"아냐, 그냥 걷고 싶어서 그래..
맑은 바람 실컷 들이고 하루를 시작할거야
학교 잘 다녀와..오늘은 엄마가 좀 늦는 날인거 알지?
고구마 쪄 놓을게 우유랑 같이 먹고있어.
학원 가기전에 부지런히 올게~"

등뒤로 흘리면서 엘리베이터를 눌렀지요..







그리고 마른 흙길을 지나 나무 계단을 디디는데..
답답한 마음이 조금 맑아지는 느낌이었어요.
'아~ 좋다..참 좋다~~'
즐거운 음악에 맞춰 발걸음도 같이 갑니다..
무거웠던 생각들을 하나씩~ 둘씩~
내려놓으면서요..




숲은 바닥을 뒹구는 낙엽들만 바스락 소리를 내며
햇살에 푸석 거렸고 띄엄띄엄...
열심히 걸으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모습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무수히 밟고 지나간 그 길에 아직 남은 초록 잎들이..
마음에 옅게 들어왔고...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 넉넉한 빛으로 떨어지는 노란 햇살을 보는데...




그 햇살들은...
바닥에 떨어져 움츠리고 있는 작은 나뭇잎들까지
따스하게 껴안아 주고 있었습니다.

숲에서 사랑이 낮은데로 내려오는 것을 곱게 바라보았지요.
그때 보고싶은 사람들...생각하며 가만히 웃었습니다..





가을속으로 혼자 걸으며 입을 크게 벌렸는데...
차가운 공기가 마음 깊은 곳까지 알싸하게 들어왔어요.
그 순간 엠피에서 들리던 이 노래..
저를 추억속의 가을로 마구마구 데려갔습니다..









돌계단을 헉헉거리며 오르다보니 땀이 송글송글 맺혔어요.
춥다고 껴입었던 옷을 벗을까 생각했지만
어제 코감기가 걸려서 꾹 참고 땀을 냈답니다.
그런데요, 그 위로 파래지는 하늘이 보이는 겁니다.

'햐~ 저 파래지는 것 좀 봐..가을 하늘은 역쉬~...'
중얼대며 눈으로... 마음으로...
파란 하늘도화지에 잎 떨군 나무를 그렸지요.







점점 더 파래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은 운동장을 지나는데
나팔꽃이 반갑게 웃고 있는 겁니다.
'어머~너희들 혹시나...했는데 그래도 몇몇은 이렇게 있었네~'
모두 시들어 떠나고 있는데 얘들...얼마나 예쁘던지요.





하얀 꽃들이 피어있는 길을 돌아보니
풀섶에서 여뀌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고...





스트로브 잣나무 발 아래엔 외로이 혼자 핀 과꽃이
자기도 좀 봐달라고 하는 겁니다. 다가가 앉았지요.
얘들은 이름은 잘 모르는데.. 금계국인가요?
다 시들어서 씨앗을 달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데..
선생님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생각났습니다..
'너희들 잘 살았어..내년에 또 예쁘게 피어나렴..'
제 작은 소리를 얘들은 분명 들었을 겁니다.^^




언젠가 오이 소박이 담북 들고온 율리안나랑 함께 앉았던 자리에
잠시 앉아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다시 좁은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얘들을 보며 가슴이 저릿했어요.

가을을 안고.. 가을속으로...오늘 걷기를 참 잘했다 싶었습니다..

..


아침잠이 많은 제게는 이렇게 걷는 일이 참 힘든데요.
숲에 들어서면 저도 모르게 제게 약속을 합니다.
'내일도 아니 쭈욱~ 걸어야지...'
하지만 작심삼일도 못 지키지요.^^

그 작심삼일이 될지라도 오늘 또 저에게 다짐하면서
숲에 잠시 앉아있다가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아침에 만난 가을...
그곳에 쓸쓸한 마음 조금 두고온 것 같은데..
오늘은 얼마나 씽씽 잘 보낼지...
아니, 잘 보내야지...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며 하루를 엽니다.

저도 이제 아이들 만나러 나갈 준비 합니다.

모두 힘찬 날~ 되세요!